한일관계 30년 사진으로본 韓.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韓日회담이 구보타 망언(일제 36년이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것이라는 내용)등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자 61년 김종필(金鍾泌)중앙정보부장은 오히라 일본외상과 고위정치회담을 벌여 대일(對日)청구권문제를 타결지음으로써 교착된 회담에 돌 파구를 마련했다.이른바 고위정치회담의 타결내용이 적힌 「김-오히라 메모」.
61년 10월부터 64년 4월까지 김종필(金鍾泌)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외상이 벌인 고위정치회담 결과 대일(對日)청구권문제가 타결되면서 韓日협정 체결이 가시화되자 국내에서는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학생.시민들의 격렬한 시 위가 벌어졌다. 그 결과 65년 6월3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주동자들을 대규모 검거함으로써 이른바 「6.3사태」가 빚어졌다.
***③협정서 마무리 韓日 양국은 51년 2월15일 수교 교섭을 위한 제1차 韓日회담을 시작한지 14년여만에 협상을 마무리짓고 65년 6월22일 도쿄에서 韓日기본조약과 제협정에 서명했다.이동원(李東元)외무장관(左)과 시나 일본외상이 각자 서명 협정서를 교 환하는 모습.
***④1차 각료회의 67년 8월9일부터 11일까지 도쿄(東京)에서 열린 제1차 韓日정기각료회의는 양국 내각이 한자리에 모여 양국간 협력문제를 논의하는 정기 협의채널로 90년까지 15차에 걸쳐 개최됐다.당시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장기영(張基榮)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左)이 각료회의가 끝난 직후 사토 일본총리와 회담하기 위해 총리관저를 방문,악수하고 있다.
***⑤DJ 강제 귀국 72년 대통령선거에서 장기집권을 꿈꾸던 박정희(朴正熙)당시 대통령을 근소한 차로 위협했던 김대중(金大中) 당시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73년 8월 일본에 체류하면서 활발한 反정부활동을 펴자 중앙정보부는 도쿄에서 그를 납치,강제 귀국시 켰다.귀국 직후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金大中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