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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경제칼럼>세계화의 자화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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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때 정부에서「新」자돌림이 그러했듯이 요즘에는「세계화」(世界化)가 유행이다.우리는 국정의 기본방향을「세계화」로 잡은 것에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이로써 오랫동안 국내의 과거청산 작업에얽매여 이끌려온 국정이 이제 초점을 나라밖으로 ,미래로 옮기는국면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화란 무엇인가.그것은 전자.정보산업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금융기관과 기업등 민간부문에서 지구전체를 하나의 영업망(營業網)으로 엮어 전개하는 자연발생적 현상이다.
각국 정부는 이러한 추세에 대응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자국의 경쟁력을 키우는 자세를취한다. 세계무역기구(WTO)출범원년이자 광복반세기인 1995년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중 몇가지 면모를 반성하기로 하자.
우선 지난날 역사는 대부분 고립국가들의 성쇠기록이라기보다 인접민족들간의 접촉기록이다.오늘날 말하는 국제화.세계화는 새로운추세가 아니라 이러한 국제적 문물(文物)교류 역사흐름의 연장이다.민족간의 문물접촉은 역사적으로 평화적 방법보 다 전쟁과 같은 무력의 방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이에 따라 발생한 민족적 자존심의 상처 또는 열등의식을 소화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오늘날 중국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 문루(門樓)에남아있는 오랑캐 글자들이 침략 흔적 으로 남아있지만 중국인의 자존심에는 구김이 없다.그러나 이른바 국민정서를 등에 업은 정부는 해방 50주년이 되어도 아직도 일제(日帝)35년의 흔적을없애기에 급급하고 있어 우리의 깊은 자존심의 상처,또는 열등의식을 표출하고 있다.이 대목에서 옹졸한 일본(日本)을 넘어서야미래지향적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둘째로 「가장 토속적인 것이 세계적」이 될 수 있다고 해서「몬도가네」식 전통풍속마저 외국인에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동하고 있다.예술인의 수련과정에서 장님만들기.씨받이등은 한두번 외국인의 관심거리가 될 수 있을 뿐이다.이웃나라 이민국 심사대앞에서 한글로 기재한 입국신고 카드를 내미는 상당수의 우리 여행객들은 이웃나라 관리에게 한국화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로 수출품과 다른 사양의 상품을 국내시장에 고가로 출하하면서 세계 주요공항 여객짐카트마다 기업로고를 부착하는 것으로 세계적 기업이 되는지 자문하기 바란다.세계일류가 아니고는 생존못한다는 구호가 얼마나 절실하게 연구개발과 기업경 영에 침투돼있는지 궁금하다.
넷째로 이른바 민주화 이후 몇갑절 인상된 임금수준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선진국 수준화를 곧 세계화로 인식하고 있는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새해에 격렬한 노동쟁의(爭議)를 준비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섯째,상아탑의 이미지를 숭상하는 학계에서는 현실사회를 모르는 것이 학자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사회과학분야에서는 곤란하다.
현실문제 연구가 이론의 개발로 승화연결되는 선진국에서와 달리 우리학계는 외국이론의 도소매업에 열성적이고 재충전 도 외국에 나가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학계 세계화의 일면이다.
여섯째,인도주의등 세계의 보편적 가치기준에서 부각되어야 할 외국사건들이 국내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반면에비싼 면담료를 치르고 만난 세계석학들에게 세계적 이슈를 문의하기보다 한국의 국내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일을 언 론기관마다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외국기관의 국내 경제전망이나,국가경쟁력 평가등이 그 기관의 공신력에 대한 고려없이 과장되게 보도된다.
이것이 세계화인가.
***보편적 가치 추구를 마지막으로 외국 손님을 맞아 그들의식성(食性)을 묻지 않고 주인의 입맛에 맞는 식단으로 대접하는경우가 없지 않다.만일 국빈을 대상으로「황새와 여우」우화속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면 이것이 세계화에 부합되는 모습인가.
세계화는 결국 민족의 풍속.취미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데서 비롯된다.취미생활에 있어 현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획일성을요구하고 있다.
세계화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가 존중되고 우리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원적 생활양식이 인정되는 가운데 민간기업부문에서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면서 전개되어야 한다.
〈西江大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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