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평화의 비전 없는 MB 독트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역시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400억 달러의 북한 개발기금을 조성해 10년 안에 북한의 개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린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다.

북핵 6자회담이 큰 진전을 보아 북한이 늦어도 내년 봄까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일에 착수한 것을 감안하면 이 당선자의 대북정책은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MB 독트린은 가장 초보적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약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북핵을 누가, 어떻게 폐기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김정일 자신도 핵 포기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 비핵화 전(前)단계에서 타협하고 ‘북핵 상황 끝’을 선언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혀 있다.

북한은 지금 핵시설의 불능화 작업을 하면서도 미국이 기대하는 수준의 핵 신고는 머뭇거리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를 압박하고, 북한은 버티기 작전을 풀지 않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6자회담 5개국은 북한에 마지막 압박을 가하고 싶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럴 수 없다. 하나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같은 유효한 압력 수단이 없는 것이고, 둘은 압박의 수준을 잘못 계산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MB 대북정책의 약점이다. 거기에는 번영은 있고 평화의 비전이 없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대로 6자회담의 성과가 핵 신고에 걸려 북한의 비핵화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MB 독트린과 ‘비핵·개방 3000’은 착수도 할 수 없는 것인가.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전제로 하는 정책은 노무현 같은 무능한 대통령에게도 가능하다.

이 당선자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무엇인가. 6자회담 합의가 백지화되지도 않고 비핵화도 실현되지 않은 회색지대에서 남북 대화와 경협은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가. 이런 단계에서 부시가 제안하고 노무현이 찬성한 남북한과 미·중 정상들에 의한 평화선언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 미국이 북한의 완전 비핵화 앞 단계에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필요한 예비 조치들을 취한다면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가 가장 확실한 평화다. 그러나 5년, 10년 안에 우리의 정의(定義)에 맞는 북핵 해결이 성사되지 않아도 평화를 단념할 수는 없다. 이 당선자는 대북 경협을 핵 폐기와 연계시켰다. 원칙과 남한 사람들의 대체적인 정서에 맞는 자세다.

그러나 이런 상호주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뿐 아니라 주요 대외정책 전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상호주의가 너무 엄격하면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핵을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 대북정책은 북핵에 종속돼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걸 뒤집으라. 북핵을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정책의 한 부분으로 격하해 북핵을 평화의 틀에 맞추라. 북핵을 아래서 올려다보지 말고 동북아와 인도·호주·중앙아시아까지 끌어안는 평화·번영정책의 높고 넓은 고지에서 내려다보라. 그 높이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비핵화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핵에 매달려 비핵화에 초조감을 보이면 북한은 더 큰 이득을 노려 핵 신고를 더욱 지연시킬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