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영화] 우릴 망가뜨린 건 당신들, 어른들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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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임필성
장르:판타지·드라마
출연:천정명·박희순·은원재·심은경·진지희 등
등급:12세 관람가

 산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청년 은수(천정명)는 숲길을 헤매다 외딴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집 참 희한하다. 알록달록한 집안은 장난감 천지고, 아침식사는 형광색의 케이크다. 흡사 유치원생들이 꿈꾸는 소형 낙원 같다. 이 집의 아이들 역시 어딘가 이상하다. 책임감 강한 13세 소년 만복(은원재), 몽유병을 앓는 12세 소녀 영희(심은경), 그리고 7세 막내 정순(진지희)까지 삼남매 모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 어른거린다. 엄마(장영남)·아빠(김경익)라는 어른들 역시 얼굴 가득한 미소에는 가식적인 기색이 역력하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쩔쩔매는 모습이 수상하다. 그 예감대로, 부모들은 하루아침에 쪽지 한 장만 남겨둔 채 사라진다. 은수는 가던 길로 돌아가려 하지만, 숲에서 길을 잃고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온다.

 ‘헨젤과 그레텔’은 기이하고 슬픈 판타지다. 익히 알려진 동화를 모티브로 삼아 버려진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꿈을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판타지로서 이 영화의 힘은 비주얼에 크게 의존한다. 집안 곳곳이 마치 동화책에서 빠져나온 듯 꾸며져 있는데, 벽에 걸린 그림이나 침대 머리맡에 놓인 인형 따위를 잘 살펴보면 은근히 섬뜩한 요소가 담겨 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아이들이 마녀를 불태워 죽이는 엽기적인 얘기였다는 걸 상기한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예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삼남매와 그림 같은 외형의 이 주택은 점차 보는 이의 공포감을 은근히 부추기는 기이한 면모를 드러낸다.

 영화의 각 장면이 마치 동화책을 펼치듯 시각적인 화려함을 차례로 선보이는 반면 각 장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바늘땀은 무척 성기다. 이 판타지의 세계에 첫발을 들인 관객들이 궁금해 할 것을, 그래서 은수의 입을 통해 나올 법한 질문들이 대개 생략된다. 이 가족이 왜, 어떻게, 언제부터 여기에 사는지 은수는 결코 물어보지 않는 희한한 예의를 발휘한다. 당초 위독한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던 은수가 생각보다 여유만만인 것도 희한하다. 그가 선량한 청년이라는 건 짐작 가능하지만, 다른 어른들과 달리 이 삼남매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품게 되는 이유는 구체적인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설득력을 건너뛰는 이 같은 바느질 방식은 결과적으로 영화에 가득한 서양동화풍의 비주얼이 공허한 과잉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은수가 본의 아니게 이 집에 묶여 있는 사이 또 다른 어른 한 쌍이 길을 잃고 이 집에 안내된다. 집안의 소소한 물건에 탐을 내던 여자 경숙(박리디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신앙심에 힘입은 인자함을 과시하던 변집사(박희순)야말로 본격적인 탐욕을 드러낸다. 이를 계기로 영화는 아이들이 겪은 퍽이나 잔혹하고 서러운 과거를 본격적으로 들려준다.

 되짚어보면 영화 속에는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곁들인 동화 겸 일기가 고스란히 현실이 되는 것이 그 한 예 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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