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副차관보 직접訪北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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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군 헬기 조종사 송환을 위해 북한이 미국에 고위정치회담을 요구하고 미국이 부차관보급을 파견키로 함으로써 北-美관계에 새로운 전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북한은 26일 뉴욕의 유엔대표부를 통해 美국무부로 서한을 보내『차관보급인사를 파견해주면 조종사 송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을 전했고 미국은 이를 수용했다.
미국정부 관리로서는 최고위급인사가 북한을 공식방문함으로써 평양에서 북한과 미국간 고위정치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한 미국정부 관리들은 켄 퀴노네스 북한담당관과 리처드 크리스텐슨 한국과 부과장 등 부과장급 실무자들 뿐이었다.
북한은 조종사 송환협상에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북한측 주장은 北-美간 직접적 군사접촉)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국정부와 북한정부 사이에 고위정치회담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최대화하고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이 노리는 목적은 여러가지로 분석된다.
민족통일연구원 길정우(吉炡宇)정책실장은 이번 회담이 예상되었다면서『이는 北-美 핵협상결과에 반발을 보인 북한의 강경군부를무마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군부는 미국의 군사적인 의도를 비난하며 북한군법에 따른 조종사의 처벌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미국과 관계개선을 원하는 북한 지도부로선 조종사를 장기간 억류할 형편이 아니며 조종사를 돌려보내는데 따른 군부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미국과 직접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온 북한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정전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있다. 단기적으로는 北-美핵협상에 따라 진행중인 경수로회담.연락사무소회담 등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명백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미군 조종사를 고위정치협상을 통해 너그럽게 해결해줌으로써 미국이 북한에「정치적 빚」을 떠안겨주는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이나 한국정부는 북한의 이같은 의도를 잘 알면서도 조종사 송환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북한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고 있다.
미군헬기 영공침범사건이 발생한 직후 빌 클린턴 美대통령은『조종사 송환을 위해선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그뒤 미국은 마침 북한을 방문중이던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그리고 핵협상 파트너였던 로버트 갈루치 핵대사-강석주(姜錫柱)북한 외교부 제1차관보 채널,판문점 군사정전위 채널 등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가동해왔다.
미국은 또 판문점 접촉을 미국과 북한간 직접적인 군사접촉으로만들기 위해 북한이 제기한 미군대표 임명요구를 받아들였으며 이번에 다시 북한의 고위정치회담 요구를 수용했다.
미국의 이같은 협상태도는 남북한 당사자에 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추진하는 한국의 입장이나 北-美간 관계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국내여론 등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에는 상당한 부담이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사건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허바드 부차관보의 북한방문에 대해 정부 한 당국자는『억류된 조종사의 송환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에 국한되는것이며 따라서 다른해석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이 지나치게 성급히 대응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康英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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