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이름 바꿔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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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아들이냐 딸이냐」고,그 다음 고심하는 것은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다.예부터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 까닭은 이름이 한평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믿었기 때문 이었다.그런이유 뿐만 아니라 이름을 짊어지고 한평생 살아야 한다면 작명(作名)에 소홀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결같이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 가운데는 남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천박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들도 많다.가령 옛날에 흔했던 「개똥이」「쇠똥이」「말똥이」 따위의 이름들이 좋은 예다.
자손이 귀한 집 에서 아들을 얻은 경우 천한 이름을 지어야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고 믿었던 탓이다.고종(高宗)황제의 아명(兒名)이 「개똥이」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요즘에도 지방에 따라서는 그런 풍속이 남아 있어 집에선 「개똥이」등으로 부르고 호적에는 개동(開童).소동(召童).마동(馬童)으로 등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그런 이름을 가진 아동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경우 친구들이 개동.소동등으로 불러주지 않고 여전히 개똥이.쇠똥이로부르며 놀려댄다는데 있다.성격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어린이도 없지 않겠지만 그렇게 불리는게 싫고 부끄러워 학교에 가기를 괴로워하는 어린이도 생기게 된다.아들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 담긴 후남(後男).말숙(末淑)등의 이름을 가진 여자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아름이.다롱이.초롱이.봄비등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들이더욱 많아지는 추세지만 한자(漢字)이름인 경우 그것을 성(姓)과 함께 우리말로 부르면 천하거나 상스럽거나 우습게 들리는 예가 적지 않다.죽자(竹子)는 흔한 여자 이름이지 만 성이 나(羅)씨면「나죽자」가 되고,「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의 치국(治國)은 꽤 거창한 이름이지만 성이 金씨면「김치국」이 되는 것이다.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는데도 「정당한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개명(改名 )이 쉽지 않았다.이번 대법원의 「국교생 개명 전면 허가」방침은 혹 이름 때문에 성격이비뚤어지거나 학업에 지장을 받는 많은 어린이들에겐 「즐거운 소식」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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