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향한무비워>13."도쿄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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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0월4일 오전9시 도쿄(東京)시내 한복판 고쿄(皇居)앞 광장.국왕의 거처인 고쿄앞에 펼쳐진 넓은 광장이다.기모노 차림에게다를 신은 할머니가 중년의 딸과 함께 우산을 받쳐들고 남쪽의마루노우치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고쿄의 외곽이자 관광명소인 니주바시(二重橋)쪽으로 걸어왔다.
『도쿄에 사는 딸을 보기 위해 야마구치(山口)에서 올라왔다』는 이 할머니는 니주바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고쿄중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된 히가시교엔(東御苑)을 둘러보겠다며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이런 모습은 50년대 일 본영화 전성기를 대표하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1903~63)감독의 대표작 『도쿄이야기(東京物語)』에서 그대로 등장한다.
흑백영화인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담담하다.시골의 노부부가 도쿄에 살고있는 자식들의 집을 방문하지만 도시생활에 바쁜 그들로부터 쌀쌀한 대접을 받는다.2차대전중 전사한 둘째아들의 며느리만따뜻한 대접을 해주고 시내구경을 시켜준다.노부부 는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이에 반성한 자식들이 고향 본가로 몰려가 사죄한다는 내용이다.
1953년 쇼치쿠(松竹)영화사에 의해 만들어져 그해 11월3일 개봉된 1백35분 길이의 『도쿄이야기』는 일본영화를 얘기할때마다 언급되는 작품.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간단한 줄거리에조용한 화면으로 이뤄져 있어 현대 영화팬들이 볼때는 답답한 감마저 준다.하지만 이 영화가 세계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만만치 않다.독일의 빔 밴더스 같은 유럽 감독들에게 일본의 최고 예술영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영화인뿐 아니라 서구의 거장들도 크게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쇼치쿠영화사 국제부의 다키자와 마사유키는『서구영화를 흉내내지 않고 소재.화면.분위기 연출.내용전개까지철저히 일본적인 개성영화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오히려 세계적 인정을 받게됐다』고 분석했다.
도에이(東映)영화사의 오지마 히데노리감독은 『노부부가 귀향해노을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회한에 잠기는 장면은 영화사에 빛나는명장면으로 꼽히는데 인간내면을 깊이있게 담아낸 이런 아시아적 영상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 영상산업의 힘은 가장 자기다울 때 최대한 발휘됨을 이영화는 보여준다.
[東京=蔡仁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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