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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신세대>애니메이션작가 김현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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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어린 소년이 하늘을 향해 날린 종이비행기는 하얀 눈송이로 변해 땅에 떨어진다.눈내리는 겨울밤.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40대 중년 사내는 꿈 많았던 어린시절을 돌이켜 본다.
애니메이션 영화 『오래된 꿈』의 시작이다.김현주(金賢珠.23)씨는 첫 애니메이션 작품 『오래된 꿈』으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정말 상 탈 줄 몰랐어요.시상식에도 안갔거든요….저에게 상을 준 거라기보다 애니메이션에 상을 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캔디」세대인 그가 만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대학2학년 때 프레데릭 벡의 애니메이션을 보고나서였다.프레데릭 벡의 『크렉』은 전원에 사는 한 일가의 이야기가 시작이다.새로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아버지는 나무를 베어 흔들의자를 하나씩만든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다 자라 시집장가가고 전원에는 아파트와 미술관이 들어선다.미술관에 견학 온 아이들은 뭔지 알기 어려운 그림 앞에서 지루해 한다.미술관 한 구석에 경비원이주워다 놓은 흔들의자는 그런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농촌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명상적인 주제를 그려낸 프레데릭 벡의 작품세계는 金씨를 사로잡았다.추상적인 회화보다 일러스트나 컴퓨터그래픽같은 다양한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터였다.
金씨는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지난 봄부터 애니메이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상영시간 5분 길이의 『오래된 꿈』을 위해 6개월동안 그가 그린 원화는 모두 1천 6백여장.일반 만화영화처럼 배경그림은 그대로 둔 채 인물의 움직임 만 바꿔가면서 촬영하는 대신 1천 6백여장의 원화를 일일이 손으로 그렸다. 영화제를 목표로 시작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로 나가던 화실도 그만두고 작업실에서 며칠씩 밤샘을 하며 출품시한을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金씨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그런 작업끝에 자기가 그린 그림이 필름으로 돌아가는 걸 보 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작수준은 세계적이지만 하청생산 위주였던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소나기 스튜디오」나 「서울무비」처럼 창작애니메이션을 주로 하는 제작사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내년 봄 시작하는 만화전문 케이블 채널은 창작 애니 메이션에 대한 시장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金씨는 이와는 조금 달리 철저하게 개인적인 제작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오래된 꿈』의 수상이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담스런격려로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단편영화제에서 독립,애니메이션영화제가 따로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金씨도 창작 애니메이션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한결같다.미국 디즈니의 『알라딘』이나 『인어공주』,일본 미야자키의 『아키라』나 『천공에 선 라퓨타』 못지 않은 한국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글:李后男기자 사진:金鎭錫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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