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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칸딘스키.모딜리아니가 본 세상1>시대를 뛰어넘어 신화가 된 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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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05면

반 고흐 작 ‘노란 집’ 1888 ⓒVan Gogh Museum

전시 타이틀처럼 반 고흐는 확실히 불멸의 화가다. 지난 11월 23일 개막한 이래 ‘불멸의 화가-반 고흐’ 전(2008년 3월 1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문의 1577-2933)은 연일 최고 관람객 수를 경신하고 있다. 그만큼 반 고흐에 대한 우리 관객의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수준이 웬만큼 담보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불멸의 화가-반 고흐’ 展

물론 우리가 잘 아는 ‘해바라기’나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수퍼스타’를 만나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이면 먹음직스럽게 잘 차려진 밥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 ‘노란 집’ ‘피에타(들라크루아 모작)’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등은 반 고흐의 대표작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위)반 고흐 작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1890, ⓒ Kro¨ller Mu¨ller

네덜란드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협조를 얻어 열린 이번 전시는 초기 네덜란드 시기부터 파리·아를·생레미, 그리고 마지막 오베르 시기까지 반 고흐의 창조 역정을 시간순으로 돌아보는 전시다. 이 시기별·장소별 구분에 다음의 다섯 개 열쇳말을 얹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화·고독·희망·구원·회귀가 그것이다.

먼저 불화. 반 고흐는 세상과 불화한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 그 불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의 하나가 석판화 ‘슬픔’이다. 반 고흐가 잠시나마 함께 살았던 미혼모 시엔을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인데, 몸을 팔아서 먹고살던 시엔은 그야말로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존재였다. 반 고흐는 그녀와 세상의 불화로부터 자신의 그것을 본 듯하다. 슬픔과 좌절에 싸여 웅크린 그녀의 모습에서 반 고흐의 고통스러운 삶이 예언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반 고흐의 가장 큰 고독은 무엇보다 그의 생전에 그의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은 홀로 외로운 그의 심정을 잘 전해준다. 이 싸지만 독한 술은 고독에 찌든 사내의 영혼으로 빚은 술처럼 보인다. 반 고흐는 그렇게 테이블 위에 서서 쓸쓸히 거리를 바라보는 술이 되었다.

세상과의 불화와 고독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의 예술이 위대한 것은 고통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낙관의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희망을 향한 그의 염원은 강렬한 노란색으로 표출되었다. 그가 무척 좋아했던 친구 고갱과 예술적 이상을 나누며 지낸 ‘노란 집’에는 희망의 빛이 충만하다. 바로 이 희망과 적극적인 생명의 의지 때문에 노란색이 많이 들어간 그의 그림은 지금도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을 열광시킨다.

반 고흐의 예술 역정을 돌아보게 하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열쇳말은 구원과 회귀다. 반 고흐는 예술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했다. 별은 그의 그림에서 구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반 고흐는 말했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지”라고.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에서 우리는 구원의 빛을 발하는 별을 볼 수 있다. 회귀의 정서는 ‘밀 이삭’ 같은 작품에서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한 알의 밀이 죽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귀의 정신이다. 반 고흐는 그렇게 미술사 속에, 또 우리의 가슴속에 죽어 다시 살아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이주헌씨는 일간지 미술기자와 미술잡지 편집장을 지내고 화랑 관장을 거친 뒤 미술에 관한 글쓰기를 천직이라 여기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미술로 보는 20세기』『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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