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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표정’ 바꾼 방송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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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까지 BBK 주가조작 사건과 이와 관련한 이명박 후보의 의혹을 집중 부각했던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 후보의 당선 이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논란만을 전달하고 있을 뿐 ‘BBK 보도’는 쑥 들어갔다.

특히 19일 오후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개표 과정에서 이 후보의 우세가 확연히 드러나자 KBS와 MBC의 보도 태도는 확 바뀌었다. 19일 MBC 뉴스데스크는 ‘험난했던 대세론’이란 보도에서 “선거 사흘 전 악재(BBK 동영상)가 또 터졌고 특검법까지 수용하며 물러서야 했지만 표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보도했다. ‘BBK 의혹’을 ‘악재’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발연) 운영위원인 연세대 윤영철(신문방송학) 교수는 “BBK 의혹 관련 특검이 아직 살아 있는 이슈인데도 대선 이후에는 이와 관련한 방송 보도가 보이지 않는다”며 “이는 대선 전 보도가 비정상적이었으며 정치적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두 방송사는 이날 이 후보의 당선이 굳어지자 카메라를 실은 오토바이까지 동원해 당선자 차량의 이동 상황을 생중계했다. 하지만 그 차에 이 당선자가 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한 방송사는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촌극도 빚었다.

이를 두고 여러 인터넷 게시판엔 “개표 방송은 뒷전이고 아예 파파라치로 전락했다”는 내용의 네티즌 비판이 줄을 이었다.
 
선거 직전까지 KBS와 MBC 뉴스는 BBK 의혹과 특검법 관련 보도에 치중했다. 특히 2000년 광운대 강연에서 ‘BBK를 설립했다’는 이 당선자의 육성이 담긴 ‘BBK 동영상’이 공개된 16일과 특검법이 통과된 17일에 이런 보도가 주류를 이뤘다. 공발연의 모니터링 자료에 따르면 16일 KBS-1TV 9시뉴스의 경우 머리기사부터 11번째 기사까지 모두 BBK 의혹 관련 보도를 했다.

여기에 들인 보도 시간은 모두 18분10초였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도 머리기사부터 10번째 기사까지 17분30초 동안 BBK 관련 보도를 했다.

이런 보도는 특검법이 통과된 17일에도 이어졌다. 공발연 모니터링 자료는 MBC가 ‘뭘 캐야 하나’라는 자극적인 자막을 붙이는 등 전반적으로 이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MBC는 선거 전날인 18일에도 ‘관심을 끈 조연들’ 보도에서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대선 관련 방송 뉴스를 모니터링해 온 바른사회 시민회의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특정 방송사는 BBK 의혹과 관련해 범죄 혐의가 있는 김경준씨와 누나 에리카 김의 육성을 직접 내보낸 반면, 이 후보 측 해명은 그림으로 처리하는 등 전반적으로 불공정한 보도가 많았다”며 “뉴스를 정밀 분석해 다음달 보고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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