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B시대 변혁 소용돌이 예고 신이 내린 직장 공기업 ‘나 떨고 있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 분야의 규모가 점점 비대해지고 효율성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며 "감시와 견제 부족으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불리며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선 직후부터 공기업들 사이에 때아닌 서울 메트로(옛 지하철공사) 연구 붐이 불고 있다. 이 당선자의 공기업 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2004년 7월 21일 오전 4시. 서울지하철노조와 도시철도노조가 전면 파업을 경고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한발 앞서 직권중재에 회부해 버렸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시민들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노조의 무리한 주장을 들어주는 악순환 고리를 확실히 끊겠다"고 선언했다.

노조는 이를 무시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공사 측은 즉각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조합원 전원 징계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한국 최대 강성 노조'라는 서울지하철 노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노조위원장이 시장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 시장은 "사장과 협상하라. 내가 만날 일 없다"며 집무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노조 내부가 균열됐다. 급기야 임시로 뽑은 위원장 직무대행이 현장 복귀를 선언했다.

이 시장은 서울메트로에 과감한 구조조정과 예산 절감을 주문했다. 그 결과 4년간 경영합리화를 통해 지하철 건설 부채를 2조7000억원가량 줄여 4조8000억원 수준에서 2조원대로 낮추었다. 고금리의 해외 부채 5335억원(연리 4~4.75%)을 사무라이(연리 0.39~1.37%)본드로 바꾸는 것만으로 708억원의 이자를 절감했다. 이 당선자는 개혁을 위해 '이명박식 구조조정 특공대'를 보냈다. 당시 영입한 강경호 서울메트로 사장은 현대그룹 출신으로 한라중공업 사장.회장을 거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서울메트로를 연구한 공기업들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신이 내린 직장'이 흔들릴 조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거대 노조들도 "어려운 시절을 맞게 됐다"며 걱정하는 눈치다.

◆긴장하는 공기업=이 당선자의 등장으로 공기업 민영화와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는 "민간과 경쟁관계에 있거나 설립 목적을 상실한 공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살아 남는 공기업도 경영합리화 압력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광수 강원대 회계학과 교수는 "이 당선자의 시장 중시.기업 친화적 정책 방향에 따라 공기업 입지는 축소되게 마련"이라며 "생존을 위해서도 공기업 스스로 조직 통폐합이나 경영합리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공과 토공의 경우 노무현 정부 들어 지역 균형 발전과 부동산 대책 최전방에 서서 몸집을 확 불렸다. 두 회사를 합치면 삼성.한전을 제치고 자산 규모 국내 1위다. 하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이 당선자는 신도시와 공공주택 확대보다 도심 재건축과 민간주택 공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내부적으로 대응팀까지 만들어 ▶경부운하 ▶주택 연 50만 호 공급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민영화는 어디까지=어떤 공기업이 민영화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단 국책은행과 자체 수입이 85%를 넘는 6개 시장형 공기업(한전.가스공사.부산항만.인천항만.인천국제공항.공항공사)이 우선 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산업은행 부분 매각과 기업은행 민영화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방만 경영으로 지목된 방송광고공사와 MBC.KBS-2TV 등도 어떻게 개혁될지 주목된다. 이 당선자 캠프 내부에선 ▶철도 운영 부분 ▶상.하수도 사업 ▶우체국 등의 민영화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영화 방식으로는 이 당선자가 관심을 표시한 '싱가포르 방식'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소유하면서 경영을 민간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정부투자기관에 해당하는 테마섹이라는 지주회사 아래 공기업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공기업 사장.감사의 물갈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CEO 출신 대통령답게 정치권 출신의 낙하산 인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하게 능력과 실적에 따라 지배구조를 개선할 가능성이 크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지금은 공기업의 이름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난립한 상황"이라며 "정권 초기에 비슷한 기능의 기관은 통폐합하고 과감히 민영화에 나서 공공 부문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