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양의 창자로 만든 바이올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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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표적인 고음악 연주단체인 ‘계몽시대 오케스트라(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

고음악 악단 ‘라 프티트 드 방드(La Petite de Bande)’는 5월21일 예술의전당에서 바로크시대 악기 연주의 진수를 보여준다. 현대인에겐 낯선 옛 악기들을 볼 수 있다.

 LG아트센터는 내년에 하프시코드를 구입할 계획을 세웠다. 하프시코드는 현대 피아노의 전신(前身)격인 악기로 현을 때리는 대신 뜯어서 챙챙거리는 소리를 낸다. 올해까지 개인 소장자의 하프시코드를 빌려 공연해온 이 공연장이 3만~6만 유로(약 4000만~8000만원)를 들여 이 악기를 독일에서 구입하는 이유는 내년 ‘고음악 붐’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하프시코드를 비롯해 바로크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 등 바로크 이전 시대의 옛 악기로 연주하는 고(古)음악 공연이 내년 무대에 15회 이상 오른다. 6~7회인 올해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횟수다.

 고음악이란, 이를테면 바흐가 활동하던 17~18세기의 악기를 이용해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이다. 금속줄을 쓰는 현대식 바이올린과 달리 바로크 바이올린은 양의 창자로 만든 현을 쓴다. 이렇게 되면 좀 더 음악이 투명해지고 음량은 줄어든다. 작곡가가 곡을 쓸 당시 생각하던 음향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줄줄이 내한한다. ‘계몽주의 오케스트라’(2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3월), 라 프티트 드 방드(5월)가 대표적이다. 고음악 연주단체 중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으로 꼽히는 악단들이다.

 독주자들도 많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존 홀로웨이(3월)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솔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앤드루 맨지와 리처드 이가는 바로크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 듀오로 6월 내한한다.

 ◆매니어 수요층 탄탄=고음악은 항상 비슷한 음악만 연주하던 클래식 공연계의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음악 매니어 전상헌(32)씨는 “이제 현대악기로 연주하는 19세기 중심의 클래식 음악을 청중들이 지겨워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옛 시대의 악기를 복원해 연주하는 데에서 상상력에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씨는 클래식음악 동호회 ‘슈만과 클라라’ 회원 100여명과 함께 수년 전부터 고음악 공연장을 찾고 있다. 2004년 이전 매년 1~2회에 불과했던 고음악 공연이 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공연 전 공부하는 모임도 갖는다. 이렇게 충성도 높은 매니어의 성원으로 다시 고음악 연주 무대가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연주료는 일반 클래식 오케스트라에 비해 싼 편이다. 이 분야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한 고음악 연주단체의 경우 지난해 내한에서 단원 60여명 기준으로 3000~4000만원을 받아갔다. 현대식 오케스트라의 3분의1 수준이다. 반면 고음악 유료 객석 점유율은 80%를 넘긴다.

 고음악 연주자들에게도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2004년 첫 내한한 세계적인 하프시코드 연주자 트레버 피노크는 “한국의 고음악 팬들은 매우 젊고, 호응이 폭발적”이라며 매년 내한하고 있다. 16세기에 쓰이다 현대에는 사라졌던 악기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조르디 사발 역시 5년간 4번 입국했다.

 내년 6개의 고음악 공연을 여는 공연기획사 ‘유유클래식’의 김재신 씨는 “크고 자극적인 소리에 길들여져있는 현대인들이 고음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재밌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극적이고 감정적인 표현 대신 섬세하고 꾸밈없는 연주가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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