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풍경] '뷰티 솔루션' 박수영 원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일가 친척 일곱명이 모두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같은 학년인 가족이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종합 미용 센터 '박수영 뷰티 솔루션'을 운영하는 박수영(여.45)원장. 그와 남편 최돈항(44)씨, 박원장의 동생 미숙(42.여).현숙(38.여).종석(27)씨, 조카 조진숙(33.여).진옥(30.여)씨는 지난해 3월 함께 4년제 온라인 대학인 한성디지털대 미용예술과 1학년에 입학했다.

일곱 중 최돈항씨만 따로 부동산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나머지는 박원장의 점포에서 함께 '패밀리 사업'을 하고 있다. 각각 머리.피부 등으로 전문화하고 이를 합쳐 종합 뷰티 숍을 이뤘다. 일가족이 동창이라는 보기 드문 일은 박원장의 작품이다.

"2002년 말 한성전문대 교수인 친구가 그러더군요. 재단에서 온라인 대학을 세우는데 미용예술과가 있으니 다녀보지 않겠느냐고요."

연예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잘 나가는 뷰티 숍을 운영하고 있었으면서도 대학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고 한다.

"현장 경험에 학술 지식을 더해 나중에 강단에 서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혼자만 다니기에는 아까워 가족들을 꾀었죠. 나를 비롯해 모두 고졸이어서 학위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남편.동생.조카 모두 반대했다. 당시는 사이버 대학들이 인터넷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때. 잘못 택했다가 대학이 얼마 못가 문을 닫아 학기당 1백50만원에 가까운 등록금만 떼이면 어쩌려느냐고 이구동성이었다.

동생과 조카들의 그런 주장을 박원장이 한마디로 잠재웠다. "1년 동안은 등록금을 내가 대 줄게." 군소리 없이 '오케이'가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남편이 가장 큰 복병이었다. 우선 부동산컨설팅이라는 직업부터 미용예술과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남편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성격이라 작은 결정도 쉽사리 내리지 않죠. 게다가 동생.조카들에게 큰소리친 등록금 허락도 받아야 하고…."

박원장은 특유의 돌파력과 집요함으로 공략했다고 한다.

"글쎄 아내가 하루에 스무번도 넘게 전화하더라고요. 말도 길지 않아요. 아내가 '다니자'그래서 내가 '안돼'하면 '알았어'하고 끊어요. 잠시 뒤에 또 똑같은 통화를 하고. 견디다 못해 그러마고 했죠. 알아보니 학교도 안정적인 것 같고, 이거 배우면 집사람이 하는 일을 더 잘 이해할 것도 같아서…." (최돈항씨)

"전엔 일하다 좀 늦으면 왜 늦었냐고 남편이 들들 볶았는데 요즘은 그런 게 싹 없어졌어요."(박원장)

수업은 인터넷에서 교재를 받아 독학을 한 뒤 과제물을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매주 일요일 서울 홍제동 캠퍼스에서 실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프로들이라 실습 점수는 최고지만 현업이 바빠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통에 과제물 점수는 별로란다.

가족 중 누가 제일 공부를 잘하느냐니 "서로 성적 비교를 안 해 모르겠다"면서도 실습은 '바로 이 사람'이 꼴찌라며 일제히 박원장의 남편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남편 최씨의 항변. "파마처럼 처음 하는 것을 시키니 그렇지 커트는 나도 자신 있다고. 이래봬도 군대에서 이발병으로 활약한 몸이야."

박원장 부부는 세살 난 딸 윤서도 실습에 꼭 데리고 다닌다. 일요일에 아기 돌볼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뛰어난 뷰티 디자이너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이를 아는 지도교수 이진옥(44)씨는 "가끔씩 윤서 수업료도 내라고 농담을 던진다"고 말한다.

여름 계절학기에 교양 과목을 들으면서는 한성디지털대의 짧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을 만들어 냈다. 이른바 '시험 부정 패밀리 사건'. 박원장은 "갑자기 별별 일이 다 닥쳐 생겨난 해프닝"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박원장 부부는 당시 두살배기 늦둥이 딸이 심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만사 제쳐놓고 딸아이 간호에 매달렸다. 동생 미숙씨는 교통사고, 현숙씨는 허리 디스크로 앓아 누웠다. 거기에 큰조카 조진숙씨의 출산과 작은조카 진옥씨의 결혼이 겹쳤다.

제 정신을 차릴 만한 건 막내 동생 박종석씨 뿐. 그런 상황에서 시험이 다가왔다. 인터넷으로 치르는 시험이었다.

누나들에게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들은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 "삼촌 부탁해요"라며 옆구리를 찔러댔다.

박종석씨는 "두 시간 안에 모두 해치워야 하니 각기 다른 답을 만들 새가 없더라"며 "별 수 없이 '복사-붙여넣기' 기능을 써 일곱 모두 똑같은 답안을 냈다"고 말했다.

제꺽 걸렸다. 모두 빵점 처리. 인터넷 게시판에는 '미용예술과의 7명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떴다. 그걸 보고 다른 학생들이 "7명이라면 그건 모씨 패밀리뿐"이라고 한동안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1학년을 마치니 올해부터는 스스로들 등록금을 내가며 다니겠다고 한 목소리다. 박원장의 동생 박현숙씨는 "전에는 미용 기술만이 손님을 끄는 전부인 줄 알았다"며 "온라인 강좌를 통해 비로소 체계적인 고객 관리 등 경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직원들에게도 공부할 것을 독려한다. 올해 자신들의 1년 후배로 입학하겠다는 여직원 하나는 학업을 위해 일주일에 이틀을 쉬도록 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여느 직원은 주 6일 근무다.

박원장은 "학사를 마친 뒤 석사 과정에 또한번 같이 도전하자고 가족들을 꾀어 보겠다"고 말한다. 그때 공략은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미 박현숙씨 등 대학원에 가겠다는 희망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박사는? 박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두고 보세요. 혹시 일가족 미용 박사 일곱명이 탄생할지."

글=권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