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히드라와 세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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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히드라(hydra)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 뱀이다.머리가아홉개다.머리 하나를 내리치면 그 자리에서 머리 두개가 솟구쳐나온다.헤라클레스가 간신히 죽였다.기업그룹은 「문어발」(octopus)에 비유된다.
머리 하나에 발이 여러 개라는 함축이다.일본기업의 「계열화체제」는 이 히드라에 비유된다.
머리가 여럿이고 각기 독립적으로 자생하며 전체로 하나의 「기업요새」를 이룬다.2차대전때까지 일본의 경제력은 몇몇 「재벌」에 집중됐다.맥아더 군정(軍政)의 강제로 재벌은 해체됐지만 그결과 머리가 여러개인 새로운 괴물을 탄생시켰다.
「문어발 체제」에선 그룹소유의 지주회사가 잡다한 「발」들의 주식을 보유한다.「계열화 체제」에서 각 회사 주주는 서로 별개다.상호주식보유와 이사회 참여를 통해 하나의 가족으로 유대를 다진다. 일본의 전체 상장주식의 70%는 은행및 기업들의 상호보유다.미쓰비시(三菱)에는 「금요클럽」이 있다고 한다.29개 회사 책임자가 매달 둘째 금요일에 만나 담소와 정보를 나눠갖는모임이다.은행중심의 수평적 계열화에다 하청및 부품공급 중심의 수직적 체제가 얽히고 설킨다.
싸고 좋은 부품이 있어도 남의 것은 사주지 않는다.
몇몇 협력업체를 통해 장기안정공급을 선호하고 협력업체 근로자들 역시 종신고용을 바라며 충성을 다한다.이 일본적 문화가 유대를 더욱 다진다.미국이 공략에 나섰지만 「20세기의 헤라 클레스」에는 역부족이다.
이 계열화체제가 스스로 느슨해지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미쓰비시 자동차가 금기를 깨고 포항제철과 자동차제조용 철판의 장기공급계약을 맺었다.닛산(日産)과 혼다(本田)도 한국철판의 품질을 시험중이다.
엔고로 일본 철판값이 너무 비싸 져 자동차 판매경쟁에서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내 계열공급업체들도 경기침체로 납품량이 계속 줄어 계열업체에만 매달리기는 어렵게 됐고 이들을 묶어온 종신고용제도가 흔들리고 있다.시장의 「세계화」로 기술과 부품협력을 통한 해외 파트너와의 협력체제가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헤 라클레스」의힘보다 「세계화」의 열기가 「외투」를 벗기는 식의 일본의 자기적응이다.
「문어발」은 유럽기업에도 드물지 않다.「히드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마추어다.그 「프로」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는 각박한 상황이 곧 지금의 「세계화」다.
〈本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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