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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은 체첸共 왜 무력진입했나-독립희망 민족 경고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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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옐친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무력을 동원,체첸공화국 정부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정책이 앞으로 강경방향으로 회귀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91년5월 이래 러시아정부가 천명해오던 민족문제의 평화적 해결책이라는 정책기조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의 정치관측통이나 언론들은 옐친대통령이 강경책으로 선회한 배경을 놓고 당황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상원과 하원에는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의 특성상 민족문제는 섣불리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에 옐친의 정치적인 부담이나 앞으로의 정치일정에도 어떤 변동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물론 옐친이 노린 바는 여러가지다.
체첸사태의 향배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다른 독립희망 공화국들과 연방내 일부 민족에「독립불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게 가장 큰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현재 민족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카프카스지역의 각 민족들에 무력을 시위해 갈등을 완화시킴으로써 연방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포위공포」에 시달려온 러시아가 회교권국가인 터키.
이란과의 사이에 완충지대를 다시 확보하게 된다는 전략적 중요성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신속.완벽하게 해결될 경우 96년 대선 재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옐친대통령 개인에게 큰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체첸이 러시아와 카스피海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데다 철도.
석유가 매장돼 있고 러시아 연방내의 유수한 석유정제시설이 있다는 경제적인 고려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옐친의 위대한 승리가 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체첸민족은「치욕보다는 죽음」이라는 전통을 배경으로 19세기 러시아의 팽창정책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으며 현재까지도 反러시아 감정이 높다.
스탈린시절 사실상 체첸인구의 전부인 50만명이 카자흐스탄으로강제 이주됐고,그 과정에서 20만명이 추위와 병으로 사망했다는것도 그들은 잊지 않고 있다.
체첸민족이 게릴라전을 시작하게 되면 같은 회교권국가인 다게스탄및 한민족인 잉구세티아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게릴라들이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등으로 확산돼 북카프카스지역 전체가「러시아의 유고」로 변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정치권이 거의 한목소리로 무력개입에 반대하는 것도 옐친으로서는 부담이다.
따라서 무력개입이 신속하게,성공적으로 끝나지 못할 경우 옐친은 체첸게릴라들과 정치권의 반대라는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모스크바=安成奎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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