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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경선 땐 외곽세력과 싸웠고 대선은 1대 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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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특별재난지역복구지원 본부를 방문해 사고 현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2007년 대선의 마지막 주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15일 오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때는 선거캠프 직원들과 빵을 함께 나누면서 활짝 웃었다. 16일 'BBK 이명박 동영상' 사건이 터지자 그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이 후보는 15일 본지와 '후보 24시간 동행취재' 인터뷰에서 "다음 정권의 양대 시대정신은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이라며 "난 국민을 향해, 국민만 보고 일을 하겠다. 정치권이 일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없고 잡아서도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 사람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일하겠다는데 정치권이 어떻게 끝까지 협조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영기 중앙일보 정치부문 데스크와의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맞은편에 있는 이 후보의 개인 사무실 '안국포럼'에서 오전 8시40분부터 1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번 인터뷰는 '2차 대선 후보 동행취재'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달 26일자부터 이명박,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이회창 무소속 후보를 상대로 '1차 후보 동행취재'를 한 바 있다. 당시 정동영.이회창 후보는 중앙일보의 인터뷰에 응했지만 이명박 후보는 검찰의 BBK 수사 발표(12월 5일) 뒤로 인터뷰를 미뤘다. 이 후보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15일 이뤄졌다.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서민과 중소기업.자영업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성장을 추구하겠다"며 "성장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갔고, 계층 간 격차를 벌어지게 했던 과거의 성장과 내가 추구하는 성장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후보와 전영기 데스크의 일문일답.

◆"'비도덕적이지만 능력 있다'에 승복 못 해"

-15개월 가까이 지지율 1위다. 왜 그렇다고 보나.

"난 정치 아마추어다. 정치 전문가들은 2002년의 기준으로 2007년을 예측한다. 2002년 기준대로라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네거티브적 음해 수법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우리 국민의 의식은 그것을 한참 앞서가 있다."

-국민의 앞서 있는 의식이라면? 무슨 뜻인가.

"능력을 보는 것이다. 능력을 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인의 능력'은 말로 하는 것이니 평가하기 힘들었다. 조그만 회사의 경력 사원 한 명을 뽑아도 이력서를 보고,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를 본다. 나는 내 이력서가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이력서를 보지 않는다."

-어떤 실적을 낼 수 있는가.

"과거 10년 전에 연 7~8% 성장하던 시절엔 빈곤층의 비율이 지금보다 낮았다. 올해 중반 이전에 5.8% 정도이던 빈곤층 비율이 지금은 10%에 다다랐다. 결국 저성장이 분배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가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본인의 도덕적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은 '이명박은 비도덕적이지만 능력이 있어서 국민이 지지한다'고 보는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20여 년간 CEO를 하고, 4년 서울시장을 하는 동안 무슨 비도덕적인 일이 있었나.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도곡동, 도곡동'하면서 엉뚱하게 끼워넣어 나를 비도덕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국민들은 안 믿는다. 비도덕적인데 능력을 보고 믿는다? 나는 도덕적으로 살아왔다. 그런 견해에 승복할 수 없다."

◆"정치판은 언페어(unfair)한 경쟁장"

-선거운동을 회고할 때 어떤 게 가장 어려웠나.

"과거에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어려웠다. 어릴 때 배가 고파도 내가 노력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 기업에 있으면서 세계와 경쟁할 때도 페어플레이를 했다. 그런데 지난 15개월간은 너무나 언페어(unfair.불공정)하더라.

페어플레이에 숙달돼 있는 내가 언페어한 경쟁을 하다 보니 굉장히 힘이 들고 혼란스러웠다."

-경선과 본선 중 어느 쪽이 더 언페어했나.

"경선 때는 상대방(박근혜 전 대표)보다 외곽의 세력들과 싸우느라 더 힘들었다. 국정원.검찰.국세청.청와대 386, 이런 데와 막 싸우니까 무척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전선이 딱 형성돼 있다. 1대 11이니까 만만치 않다."

◆"노 대통령 조직생활 안 해봐서…"

-노무현 정부가 잘못한 게 뭔가.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386 등 정권을 둘러싼 세력의 반시장적 분위기가 가장 문제였다. 기업들에게 아무리 잘해 보자고 말해도 그 사람들이 반시장적인 분위기이니 기업들이 항상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둘째로는 청와대가 정치의 메커니즘을 흐트러뜨렸다. 여당 없는 선거가 어디 있나. 민주주의는 정당정치가 기본인데 그 당이 사라져 버렸다."

-노 대통령의 언어를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미숙성 때문 아닐까. 조직생활을 안 해봐서 그럴 것이다. 조직생활을 해보면 조직에 관련된 여러 가지 몸가짐에 익숙하다."

◆"BBK 탓에 재산 헌납 늦춰"

-재산 헌납을 결정할 때 어렵지 않았나.

"내가 현대그룹을 떠날 때 이미 생각한 일이다. 1995년 아내하고 약속도 했다.우리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말자고 했다. 아내에게도 이야기를 안 했지만 사실 그 이전에 어머니와 약속했다. 64년 12월이다. 나는 감옥에서 나와 대학 졸업 목전에 있었고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계셨다. 그때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한 가지는 돈을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을 한 벌 해 드리겠다는 것이었는데 불과 얼마 후(12월 15일) 돌아가셔서 못 지켰다. 둘째 약속은 언젠가 내가 잘살게 되면 나같이 살던 사람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네가 남의 도움을 받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남에게 도움을 주어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약속이었다. 좀 더 일찍 하고 싶었는데 BBK 때문에 못 했다. (의혹을) 상쇄하려 한다고 생각될 것 같아서다."

◆"박근혜 후보와는 집권 뒤 더 화합"

-박근혜 전 대표와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

"박 대표는 원칙에 충실한 정치인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있다고 본다. 박 대표와 같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 한나라당은 유지돼 왔다. 집권하면 더 화합해서 잘해 나갈 것이다. 정권을 두 번이나 뺏기고도 이름을 유지한 당은 한나라당밖에 없다. 10년이 짧다면 짧지만 그동안 한나라당은 정통 정당이 됐다. 정동영 후보도 있지만 노무현 정권 이후에 여당은 당명을 6번이나 바꿨다. 이회창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점에서 유일한 정통 정당의 정통 후보다."

정리=서승욱.임장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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