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원전산업 르네상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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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1면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긴 ‘겨울잠’에 빠졌던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세계적인 중흥기를 맞고 있다. 원전은 현재 31개국에서 439기가 가동 중이다. 여기에다 30기가 건설 중이고 80기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막대한 건설비용, 안전에 대한 불안,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 고질적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구온난화 방지와 에너지안보를 함께 해결하는 대안으로 원전 건설의 필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유가의 고공행진이 거듭되면서 원전에 대한 일반의 거부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핀란드와 프랑스가 신규 건설에 먼저 나섰고,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위협에 겁을 먹은 동유럽 국가들이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원전 적극 건설로 돌아섰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건설센터는 중국과 미국이다. 중국은 2020년까지 30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웨스팅하우스가 현재 건설 중인 4기는 2013년 완공된다. 1979년 스리
마일 원전사고 이후 신규 건설을 보류해오던 미국은 건설허가 신청을 지난 9월부터 근 30년 만에 다시 받기 시작했다. 현재 17개사가 32기 건설을 위해 줄을 서 있다. 미국에서 원전은 103기가 가동 중이고 전체 전력의 20%를 충당한다.

러시아는 2020년까지 원전시설 용량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도 원자력발전 비율을 25%에서 2025년까지 40%로 늘릴 계획이다. 프랑스는 59기의 원전이 전체 전력의 78%를 공급하는 원전 대국이다. ‘원전 르네상스’(Nuclear Renaissance)란 말이 엉뚱하지 않다.

그러나 원자력이 ‘세계를 구하는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아직도 적지 않다. 오스트리아와 덴마크·아일랜드는 원전 건설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벨기에와 독일·스웨덴은 가동 중인 원전을 단계적으로 없애 나가도록 법제화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설 붐에 따른 전문인력과 부품공급 장애도 발등의 불이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원전국들의 경우 건설 및 운전에 경험 있는 인력이 태부족이다. 20여 년의 건설 공백 때문에 기술인력의 신규 충원이 부진했고, 기존 숙련인력들은 은퇴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건설노임도 치솟는다. 20년 전 원전부품 업체는 세계적으로 1000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100개 미만이다. 거대압력용기와 증기발생장치 등 9개 핵심 부품은 일본 한곳에서만 생산되고 있어 주문에서 인도까지 6년이 걸릴 정도다.

가압경수로의 간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일본의 도시바로 주인이 바뀌었다.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제공을 받던 미국-프랑스 제휴 프라마톰은 아레바(Areva)로 재편되면서 독일의 지멘스가 34%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GE와 일본의 히타치와 함께 얼마나 새로운 기술로 원전 건설의 경제를 실현하고 안전성을 확보하느냐에 원전 르네상스의 장래가 달려 있다. 원전 운영에서 단기 업적주의보다는 장기적 경영을 지향하고, 원자로 설계를 표준화해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고 국제적 협력으로 경제성과 안전도를 함께 높여가는 것이 당면한 주요 과제다. 방사성폐기물 처리는 원전 종주국인 미국마저 영구적 해결책이 아직 없고, 재처리 과정에서의 플루토늄 추출 등 핵무기 확산 우려도 원전 중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최고 수준까지의 안전도를 지켜 나간다면 원전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고, 체르노빌 이후의 세계 원전가동 실적이 바로 이를 입증한다.

한국은 원전 20기로 발전량의 40%를 충당하고, 토종기술을 통한 국산화와 표준화로 원전의 해외수출까지 넘보는 세계 6위의 원전대국이다. 세계 원전 붐에 따른 틈새시장 공략을 노려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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