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사모펀드 열풍이 왜 갑자기 식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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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0면

잭 웰치(72·오른쪽)는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를 20년간 맡았다. 웰치의 아내인 수지 웰치(48·왼쪽)는 세계적 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지냈다.

Q: 한때 기업을 거침없이 사냥했던 사모펀드 열풍이 순식간에 식고 있습니다. 수많은 거래가 깨지거나 무효가 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뉴욕주 그레이트넥에서 앨런 엥글)

A: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죠. 앞서 우리 부부가 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칼럼을 참고하시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사모펀드 에너지원인 돈을 마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이 인수합병(M&A) 거래를 중단하기 바쁩니다. 불안감에 휩싸인 때문이지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풍경과 비슷합니다. 어떤 이는 구명정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고, 어떤 이는 넋을 잃고 공포에 질려 울부짖기만 합니다. 어떤 이는 죽음밖에는 뾰족한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초연해합니다. 한때 기업 사냥과 자산 매수에 취했던 사람들이 요즘 보이는 모습과 같지요?

그들이 아우성치기 전에 빠져 죽을 것 같은 유동성 홍수를 만끽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기업과 자산을 먹어치웠습니다. 대담무쌍했습니다. 리스크를 감안하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위기의 그날이 오면 적절하게 관리하거나 피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이 마침내 다가왔습니다. 관리하기는커녕 탈출하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탈출했거나 탈출하려고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합니다.

물론 M&A 계약 등에는 퇴로가 있게 마련입니다. 상황이 급변했을 때 계약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조항이 들어 있게 마련이지요.

요즘 상황에서 최고경영자(CEO)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거래의 당사자라고 생각해 봅시다. 당신의 협상팀이 한 주당 23달러라는 ‘후한’ 값을 제시했습니다. 인수대상 기업의 경영진은 “웃기지 마시오!”라며 “27달러 이하로는 안 된다”고 응수합니다. 이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버티면서 한 번에 0.5달러씩 가격차를 좁혀 나갑니다. 마침내 마지막 조건까지 타협이 이뤄져 주당 25.5달러로 거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양쪽이 애초 제시하고 요구한 가격의 딱 중간값입니다. 금요일 오후 8시, 당신과 상대 기업 CEO가 만나 악수를 합니다. 진이 빠지긴 했지만 의기양양한 상태로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서류를 준비해 주시오. 월요일 주식시장이 개장하기 전까지는 돼 있어야 합니다.” 변호사들은 정신없이 바빠집니다. 이들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협상 완료와 M&A 성사 사이에 있는 기간에 거래를 망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인수대상 기업에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거나 주요 거래처가 파산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겠죠. 전체 계약 진행과정 중 이 단계는 대개 큰 소리나 잡음을 일으키지 않고 무난하게 넘어가곤 합니다. 그런데 종종 간과되는 함정이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거래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는 ‘중대한 상황변화’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관련 법의 규정이 모호한 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또 다른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을 콕 집어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인수대상 기업의 이익이 20% 감소하는 걸 여기에 포함시켜야 할까요? 아니면 15% 감소로 해야 할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따라서 변호사들은 보통 양쪽이 모두 OK 사인을 낼 수 있는 모호한 단어로 이 조항을 남겨두곤 합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현재 서브프라임 사태로 그렇게 많은 기업이 양해각서(MOU)나 계약서의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 왜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는지 이해가 되겠지요.

현재 미국의 가장 큰 학자금융자회사인 샐리 매나 사모펀드 J C 플라워스, 또 다른 사모펀드 세버러스, 세계 최대 리스회사인 유나이티드 렌털 등이 M&A 열풍 시기에 기업 사냥에 뛰어들었다가 법정 다툼에 휘말려 들고 있습니다. 해결되는 데 적어도 몇 년은 걸리겠지요.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가 낭비될 것입니다.

신용경색이 완화되고 경제가 회복되면 계약서의 조항이 지금처럼 중요하지는 않을 테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술책이 숨어 있거나 장난칠 여지가 있는 계약은 늘 있는 법입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든 위험을 빠져나가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플레이어도 항상 있게 마련이고요.

서브프라임으로 초래된 현재의 혼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CEO가 리스크의 작은 세부사항들까지 고려하며 거래를 끝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협상 과정이 지루하기 짝이 없고 재미없다고 해도 꼼꼼하게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특히 위험한 시기엔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힘들다고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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