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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야생동물 비밀생활 벗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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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현대 동물행동학의 창시자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콘라트 로렌츠(오스트리아, 1903~89)박사는 동물을 관찰하는 방법이 유별났다. 최근 번역돼 나온 '야생거위와 보낸 1년'에서도 그렇듯이 동물들이 제3자로서 지켜보는 인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친숙한 상태에 도달해야 동물들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자연관이다. 그는 "제대로 보호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대상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제인 구달(70)박사도 마찬가지. 1960년부터 탄자니아의 곰비국립공원에 들어가 처음에는 수컷 침팬지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끈질긴 호기심과 친근감을 앞세워 침팬지 가족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하늘을 날고 물속을 헤매고 다니는 동물들과 인간이 함께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인간이 다가서려 해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범접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자장치의 응용이 필수적이다.

철새나 연어 등의 이동경로와 귀소본능을 파악하기 위해 몸의 일부에 달아놓은 표지나 꼬리표가 첨단과학의 변천과 함께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연구자만이 알 수 있도록 특정 주파수를 내보내는 무선송신기부터 각종 센서나 카메라의 부착은 물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최첨단 전자장치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분야는 무한하다. 일명 '동물 목에 방울 달기'로 통하는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지난 5일 영국 옥스퍼드대가 발표한 비둘기의 행동은 흥미롭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태양의 위치로 방향을 파악하든지 새들이 갖고 있는 머릿속 나침반의 작용일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들이 비둘기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한 뒤 GPS 위성을 이용해 이동경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로를 기억해 집을 찾아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진의 팀 길포드 박사는 "일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데도 비둘기들이 교차로를 돌아 방향을 바꾸는 등 우회로를 통해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GPS 위성장치보다 먼저 개발돼 동물행동학을 주도한 전자장치가 무선송신기다. 한국교원대 박시룡 교수는 "철새 연구 등에 쓰이는 간단한 표지로는 지속적인 관찰이 어렵기 때문에 세밀한 영역의 동물 행동 연구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무선송신기를 박쥐와 서해안 갈매기의 행동 연구에 사용해 왔다. 문제는 만만찮은 가격. 갈매기 행동 연구를 위해 대당 50만원을 들여 세마리의 새끼에 5g의 무선송신기를 채웠다. 반경 3~4㎞ 내에서 1백55㎒ 영역의 주파수를 보내는 송신기로 배터리 수명은 6개월~1년에 달한다. 박교수는 3년 뒤 황새에 위성과 접속되는 무선송신기를 달아 이동경로를 면밀하게 파악할 계획이다. 2002년 독일에서는 여섯마리의 황새에 인공위성으로 인식되는 무선송신기를 달아 아프리카에서 독일로 이동하는 모습이 TV와 인터넷으로 생방송된 바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전자장치의 무게 또한 점점 줄어들어 꿀벌과 같은 곤충에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꿀벌에 2㎝ 정도의 초소형 레이더 장치를 가슴 부위에 달아 꿀벌이 먹이를 찾았을 경우 동료들에게 먹이의 위치를 알려주는 방법이나 집으로 돌아올 때 특징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한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미국 국방첨단사업연구국(DARPA)은 꿀벌이 개보다 폭발물을 탐색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눈곱만한 크기의 무선송신기를 꿀벌에 부착해 실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중동물 중에는 돌고래를 상대로 무선송신기를 이용한 실험이 일찌감치 시도됐다. 미국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수족관은 돌보고 있던 돌고래 세마리의 등지느러미에 무선송신기를 부착해 87년 6월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중 두마리의 무선송신기는 고장을 일으켰고 나머지 한마리의 무선송신기만 배터리 수명이 다한 그해 10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신호를 보내왔다.

이 기록에 의하면 돌고래는 95일 동안 20만 차례 잠수했고, 물속에는 평균 34초 동안 머물렀으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시간은 8분 정도였다. 미 플로리다 하버브랜치 해양연구소에서도 돌고래에 초단파 무선송신기를 달아 돌고래의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해양자원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훈련된 돌고래에 각종 장비를 부착하면 바다의 수온이나 해류의 속도 등을 대신 측정해 올 수 있다"며 "카메라를 부착하면 수중 사진과 동영상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이라크전에서는 미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돌고래 두마리가 실전에 투입됐다. 돌고래의 수중음파 탐지능력을 이용해 걸프해역에 설치된 기뢰를 찾아내 수면에 표지물을 세우는 임무다. 미 해군은 "돌고래들이 밝혀놓은 안전한 진입로를 통해 구호물자 등을 실어나르고 있다"며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항의에 맞서고 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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