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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돈·싫·어!’ 100원에 울고 웃는 기업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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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광동제약 김봉수 마케팅팀장은 요즘 대표적인 효자 상품인 ‘비타 500’을 볼 때마다 고민스러워진다. 최근 국제시장에서 비타민C 원료 값이 20%나 올라 원가를 맞추기가 빠듯해진 것. 그러나 2001년 출시 당시 제품 이름에 맞춰 500원으로 결정된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 차장은 “‘비타 500=500원’이라는 등식이 마케팅의 큰 장점이었는데 갑자기 ‘비타 600’으로 이름을 바꿔 600원을 받기는 힘들다”며 “병 값 등 다른 원가를 절감해 500원 가격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밀가루·유제품·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을 안게 된 식음료업체들이 가격 책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10원짜리는 거의 찾기 힘들어졌고 100원짜리 동전도 별 쓸모가 없어진 요즘, 가급적 잔돈이 필요없는 가격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잔돈을 거추장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의 심리 때문에 매출이 확 줄어들 수도 있다. 특히 동네 수퍼나 편의점 등에서 많이 팔리는 과자·빙과·드링크 등을 만드는 회사들이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올 3월 1일 발효유 ‘윌’의 값을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올렸다. 그러자 월평균 약 2100만 개이던 판매량이 2000만 개 수준으로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1000원짜리 한 장 내고 제품을 집으면 됐지만, 가격 인상 후에는 100원짜리 동전을 더 내야 하거나 900원을 거슬러 받아야 하는 ‘귀찮은 과정’ 때문에 덜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 저항’이라기보다는 ‘잔돈 저항’이 판매량 감소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잔돈 저항’을 줄이기 위해 유통업체나 소비재 생산업체들은 여러 가지 꾀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격을 올리지 않고 대신 양을 줄이는 방법. 롯데제과는 11월 꼬깔콘의 희망소매가격은 500원으로 그대로 두고 양만 47g에서 42g으로 줄였고, 크라운은 1000원짜리 조리퐁의 양을 20g 줄였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자칫 ‘소비자의 눈을 속였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 쉬워 아예 반대로 양을 늘리거나 제품의 질을 높이면서 값을 올리는 방법도 나온다. 빙그레가 샌드형 아이이스림 ‘빵또아’의 양을 150mL에서 180mL로 늘리면서 값을 700원에서 1000원으로 맞춘 것이 그 예.
 
편의점들도 500원·1000원 단위로 끝나는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을 줄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GS25의 경우 한 매장에서 보통 2000여 종류의 제품을 파는데, 절반 이상이 500원이나 1000원으로 딱 떨어지는 제품들이다.

연세대 오세조(경영학) 교수는 “소비수준이 높아지고 물가가 계속 오르면서 10원·50원·100원짜리 동전의 구매력은 자꾸만 떨어지고 있어 이 같은 ‘잔돈 저항’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상·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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