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선에만 관심 있는 이상한 대선 후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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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말이지 이상한 대통령 선거다. 대선 투표일까지 아직 6일이나 남았는데 정치권은 대선 결과보다 내년 4월 실시될 18대 총선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대선 후보들조차 아예 대선은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 대선 득표율은 총선을 향한 디딤돌 의미밖에 없다. 이런 태도는 대선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이 끝난 뒤에도 BBK 의혹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삼성 특검’과 ‘BBK 특검’을 활용해 총선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당 소속 의원들은 중앙당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지역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동영 후보조차 의원들이 뛰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나섰겠는가. 또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대선 후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충청권과 영남권을 기반으로 당을 만들어 총선에 대비하겠다는 말이 이 후보 주변에선 공공연하게 나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측은 “대선에서 선전해야 대선 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선이 총선의 보조수단으로 변질되는 희한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희한한 현상은 1위 후보의 장기 독주가 그 원인이기는 하다.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정치를 그만둔다고 하면 당장 캠프에 몰려든 정치인들이 희망을 잃고 선거운동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대선에는 당선이 유력한 후보만 출마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당선보다 정책과 정치철학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총선용 대선 출마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대선 후보에 대한 국민의 투표를 총선 예비투표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대선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끌고 갈 선장을 선택하는 기회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와 정당들이 아예 총선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무책임한 행위다.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홍보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