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35. 미국 작곡가와 교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1963년 반도호텔에서 가야금 협주곡을 만들고 있는 필자(左)와 미국 작곡가 알란 호바네스.

요즘에는 한국에 외국인 작곡가가 들어와도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서양음악 작곡가가 한국에 오면 음악계의 관심이 온통 그에게 집중됐다. 그중에서 특히 화제가 됐던 작곡가가 루 해리슨이다. 미국 서부를 근거지로 삼아 혁신적인 곡을 많이 썼던 그는 동양음악에 관심이 컸다.

내가 서울대 강사로 일하던 60년대 초 한국에 온 그는 ‘새 당악 무궁화’라는 곡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을 계기로 나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를 서울 삼청동 우리 집에 초대했다. 해리슨은 언제나 얇은 슬리퍼만 신고 다녔다. 구두는 물론 양말도 신지 않아 맨살이 드러났다. 신발을 벗고 온돌방에 들어오게 되자 그는 “신문지 좀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지금 신발을 벗어봐야 소용이 없다. 어차피 슬리퍼만 신고 다니느라 발바닥이 너무 더러우니 신문지를 깔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신문지를 한 장 한 장 깔면서 밟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절대 넥타이를 매지 않고 헐렁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그는 괴짜 작곡가로 통했다.

그는 실험적인 일을 많이 했다. 한국에 일년 정도 머물면서 우리나라 전통 피리를 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좁은 음역(音域)을 넓히는 일도 했다. 펜으로 쓰는 서양식 서예에도 소질이 있었던 그는 미국에서 소방대원 등 여러 직업을 거치는 등 작곡가로서는 색다른 경력이 화제가 됐다. 65년 샌프란시스코에 초청받았을 때 나는 해리슨의 곡 ‘태평양 론도(Pacific rondo)’를 연주곡으로 택했다. 문명 간 교류와 화합을 노래하는데 이만한 곡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내가 교류한 또 한 명의 외국 작곡가는 미국의 알란 호바네스다. 당시 미국에서 많이 연주되는 곡들을 만든 작곡가 10위 안에 들 정도로 거물급 작곡가였다.

그는 63년 가야금 협주곡을 쓰기 위해 한국에 왔다. 곡명은 ‘심포니 16번’이지만 형식은 가야금과의 협주였다. 그는 현재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에 머물면서 이 곡을 썼다. 나는 이 호텔에 수 차례 드나들면서 그에게 가야금에 대해 설명했고 이 협주곡의 가야금 파트를 함께 만들어갔다. 나의 가야금 소리를 듣자 그는 굉장히 아름답다고 칭찬하면서 나에게 곡의 초연을 맡겼다. 정회갑 선생이 작곡한 협주곡을 초연한 뒤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두 번째 기회였다.

KBS 청사가 남산에 있던 시절 공개 녹음실에서 호바네스의 지휘로 KBS 오케스트라와 초연했다. 이 밖에 도널드 서, 얼 킴 등 미국 작곡가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들은 내가 국악을 하는 데에도 생각의 지평을 넓혀줬을 뿐 아니라 훗날 미국 순회 연주를 다닐 때는 현지에서 형제처럼 나를 돌봐줬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