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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2등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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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육상의 단거리 경주에선 처음부터 전력으로 질주해 순위를 가른다. 그러나 중장거리 경주에선 처음부터 전력으로 치고 나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초반부터 전속력으로 뛰다간 자칫 오버페이스로 경기를 망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장거리 경주에는 다양한 전략이 쓰인다. 초반에는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슬슬 달리다 경기 막판에 스퍼트하는 전략이 한 가지다. 처음부터 선두에 나서기는 싫고, 그렇다고 너무 처지면 경기 막판에 추격이 어려워진다. 경기의 최종 목표는 1등이지만 경기 중에는 선두에 서는 게 영 부담스럽다. 맞바람을 안고 달릴 경우 앞장선 선수는 체력 소모가 가중된다. 맨 앞에 서서 달리면 뒤에 오는 선수들을 살피기도 어렵다. 그래서 중장거리 경기를 보면 초반에 2위 자리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마라톤에서는 기록 단축을 위해 아예 일부러 앞장서서 달리는 페이스 메이커를 기용하기도 한다.

달리기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실력껏 뛰어 은메달이나 동메달에 그치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마라톤에선 끝까지 완주한 것만도 대단하게 쳐 준다. 반면에 포커나 고스톱 같은 사행성 도박 게임에선 최후의 승자는 한 사람뿐이고, 그 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한다. 기업들의 특허 경쟁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의 특허권을 따기 위해 전력을 다해 연구개발에 매진한다. 여기서 한 발이라도 특허권을 먼저 딴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독식한다. 이 경쟁에서 2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승자 독식 게임에서 2등은 가장 많이 잃는다. 처음부터 뒤로 처진 3등은 아예 일찍 포기라도 하겠지만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 밀려난 2등은 그동안 퍼부은 노력의 대가를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대통령 선거 역시 대표적인 승자 독식 게임이다.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는 당당히 대통령이 되어 정권을 차지하지만, 여기서 2등을 한 후보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다. 그런데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선 이상하게도 실익이 없는 2등 경쟁이 치열하다. 1위 후보를 멀찍이 앞에 두고 2, 3위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고 있는 것이다. 막판 스퍼트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결승점이 너무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2위 경쟁의 내부 목표는 내년 총선이란 얘긴가. 여러모로 헷갈리는 대선정국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