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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조각가 류인 추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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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거친 그들이 메마른 이 시대에 한 인간으로 남아주길 원했고 함께 하는 공기를 정열의 뜨거움으로 데워 그 숨소리가 서서히 가슴으로 밀려와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했던 그 손은 우리를 버리고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조각뿐이라면 그 조각을 할 수 있는 육체적 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던 조각가 류인(1956~99). 마흔 세 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뜬 그의 분신 같은 작품이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 18일부터 3월 7일까지 서울 관훈동 모란갤러리에서 열리는 '조각가 류인 5주기 추모전'에는 그의 숨결이 살아있는 유작 22점이 나온다.

86년작 '조각가의 혼'부터 97년작 '하산'까지 류인이 몰두했던 것은 인체다. 아름답고 거룩한 몸이 아니라 찢어지고 피흘리는 슬픈 몸이었다. 우리 몸을 옥죄는 것들에서 탈출하려는 조각가의 꿈은 폭발하듯 '고깃덩어리' 육체를 대지 속으로 내던진다. 그는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 있음의 확인"이라고 말했었다. 어둠을 박차고 땅에서 꽃처럼 피어오르는 울퉁불퉁한 몸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한다.

미술평론가 최열씨는 "인간의 근원에 자리잡은 불안과 공포, 소외와 억압의 굴레를 고스란히 읽어내는 류인의 맑고 투명한 눈길! 나는 그 눈길이 읽어낸 추악함과 지독함을 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혐오감에 떤다"고 썼다.

20세기 한국의 조소예술가들 가운데 인간의 고통과 소외에 맞서다 요절한 조각가 권진규.박희선.류인은 세상의 부조리와 작품으로 싸우다 별이 된 신화일지 모른다. 류인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저리 비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절망을 뿌리치는 희망의 목소리로 우리 가슴에 와 박힌다. 이제 그가 남긴 조각이 그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02-737-005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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