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80년대 亞洲사이클계 최강 스프린터 김철석 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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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돌아온 장고」김철석(金鐵石.34)-.
80년대 아시아사이클계를 주름잡던 스프린터가 경륜 선수로 사이클계에 컴백,화제가 되고 있다.
88년 8.15전국일주 도로대회 단체.개인우승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청산했던 김철석은 6년동안의 공백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경륜에 입문,제2의 사이클인생에 다부진 도전장을 낸 것.
그가 경륜에 도전장을 낸 이유는 간단하다.
호랑이없는 굴에서 왕노릇하는 토끼(?)들을 더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출사표다.
올림픽 벨로드롬을 질주하고 있는 1백10명의 경륜선수중 그만큼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선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경남대 1학년때인 79년 국가대표로 첫 발탁된 金은 87년까지 대표선수로 활약하면서 도로사이클부문에서 명실상부한 아시아최강의 자리를 줄곧 지켜 한국사이클의 위상을 한차원 높인 스타플레이어. 그의 주종목은 강인한 체력과 지구력을 요하는 도로경기.특히 1백㎞ 도로단체및 개인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그는 같은해 열린 방콕아시아선수권대회와 3년후 열린 85서울아시아선수권대회를 거푸 석권했으며,그동안 국내 무대에선 수십차례 우승을 거머쥐는등이 부문에 관한한 필적할만한 선수가 없었다는 것 이 당시 그에대한 평가다.
현역선수생활을 마감한 뒤엔 동양나이론에서 코치로 변신,후배양성에 나서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초 경륜사업본부로 이적,훈련원교관.검차요원의 일을 맡아오면서 착실히 경륜출범준비를 거들어 왔던 것.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사이클이 좋아 경륜관련 일을 맡아왔지만 선수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사실 검차일이란 선수들의 안전을 생각할 때 더없이 중요한 역할이긴 하나 그래도 제게는 허드렛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뿐만 아니라 정식선수도 아닌 동호인출신 선수들이 벨로드롬을 씽씽 달리고 또 우승까지 할 때는 경륜선수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어요.』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검차요원의 한달 봉급은 1백50만원.그러나 경륜선수로 잘만하면 한달에 5백만원정도는 넉넉히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안양에서 부인 박효진(朴鎭.31)씨,8세난 아들과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그는 이번이야말로 전세살이를 청산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로 믿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경륜이 시작된지 두달도채 안됐지만 1급 선수들이 벌어들인 상금수입은 월평균 5백만원을 훨씬 넘는다.
자신에 대한 올드팬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1m74㎝,82㎏의 당당한 체격.파워는 종전에 못미치나경륜훈련원에 입소,4일째 훈련을 받고 있는 金은 내년 3월 시즌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다.
〈鄭太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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