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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10] 후보들의 마지막 전략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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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05면

이명박 후보는 ‘투표율 끌어올리기’로 국면을 전환한다. 검찰의 ‘BBK 수사’ 발표 이후 그는 납작 엎드렸다.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거듭 머리를 숙였다. 당에서는 “절대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경고가 이어졌다. 7일의 ‘재산 헌납’ 발표가 하이라이트였다.

총선까지 겨냥, 李 “과반 압승” 鄭·昌 “37%로 당선”

정두언 전략기획총괄팀장은 “남은 기간은 투표 참여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표 독려 체제로 들어가는 것에는 “이미 대선 승부는 끝났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2, 3위 후보와 싸움을 하면서 이 후보 옷에 흙이 묻는 것을 피하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야심은 따로 있다. 50% 이상의 득표로 집권 초기를 힘있게 끌고 나가려는 구상이다.

이태규 전략기획팀장은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투표장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며 “이 후보가 1987년 민주화 이후 과반 득표로 당선되는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첫 선거인 88년 대선(13대)에서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을 비롯해 50% 이상 표를 얻은 대통령은 안 나왔다. 3자구도였던 14·15대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42.0%와 40.3%의 지지를 받았다. 양자구도였던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득표율은 48.9%다. 이번 대선이 3자구도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 후보는 과반 득표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텃밭인 영남 지역의 투표율이 관건이다. 이미 영남 지역 의원들에게는 “대선 기여의 평가기준은 득표율이 아닌 투표율”이라는 지침이 전달됐다.

여기에 맞서는 정동영·이회창 후보에게는 여전히 ‘BBK 사건’이 유효한 카드다. 이념적 좌표가 정반대여서 연대가 불가능해 보이는 두 후보지만 이 사안만큼은 ‘공조 모드’다. 노림수에는 차이가 난다.

정 후보 측은 BBK 수사 발표를 지지층 결집의 계기로 생각한다. 이번 수사 결과를 만들어낸 실체가 이명박 후보-한나라당-검찰-재벌-보수 언론의 ‘수구부패 동맹’이라고 규정하고 남은 열흘간 ‘반(反)부패 세력’을 모으겠다는 의도다.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은 “부패세력에 대한 분노와 중산층·서민의 위기의식이 서서히 결집하는 움직임이 여론조사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후보 측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마음을 움직일 단서가 BBK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김정술 법률지원단장이 김경준씨 변호인단에 들어가 수사 사항을 낱낱이 살피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검찰 발표에는 없었던 ‘한 방’을 찾아낸다면 박 전 대표가 돌아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역설적으로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 표를 빼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박 전 대표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이회창 후보에게는 영남의 보수가 핵심기반으로 박 전 대표와 지지층이 겹친다”며 “이명박 후보가 우파의 지지를 받는 데도 박 전 대표와 정몽준 의원의 도움이 크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회창 후보에게 박 전 대표는 끝까지 놓을 수 없는 끈이다.

두 후보가 BBK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이회창 후보는 ‘보수의 선명성’을 부각시켜 이명박 후보 지지자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유석춘 정무특보는 “YS정부는 청와대에 ‘386’을 기용하면서 좌파 정부 등장의 숙주 노릇을 했다”며 “이명박 후보를 감싸고 있는 의심스러운 386 출신들은 한 번도 ‘전향 선언’을 한 적이 없다”고 공격한다.

자녀 위장 취업, 위장 전입 등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도 주요 공격 포인트다. 김병호 의원은 “BBK 이외에도 이명박 후보의 자질 판단 기준으로 봐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헌법 개정을 포함한 강도 높은 공약을 던지는 충격요법 구상도 있다.

TV토론이 진행되면서 이회창 후보의 자질론이 서서히 부각될 것이라는 바람도 있다.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BBK 수사 발표 직후 이명박 후보 쪽으로 반짝 쏠림현상이 일어났던 게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며 “부동층이 우리 쪽에 흡수되면서 최종적으로 37∼38%의 표를 얻어 승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가 대선 역전의 필수조건이다. 정기남 공보특보는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겪었지만 문 후보와 함께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의 연대를 구축하면 표의 결집이 가속될 것”이라며 “보수가 분열하면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35% 정도로 낮아지는 반면 단일화 효과로 상승세를 탈 경우 우리는 37∼38%의 표를 얻어 당선이 가능하다”는 셈법을 내놨다.

서종화 부대변인은 “결국 승부는 10만∼20만 표로 갈릴 것이기 때문에 80여만 표의 향배가 결정될 부재자 투표(13∼14일) 이전에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퍼져있다”고 밝혔다.

김지연 밀워드브라운미디어리서치 이사는 “진보진영을 결집할 수 있는 계기와 명분을 주는 형태로 후보단일화가 이뤄진다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세 후보의 모든 전략은 대선 너머 총선까지 시야에 두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정쟁에서 발을 빼는 사이 한나라당은 2, 3위 후보를 거세게 몰아칠 태세다. 박형준 대변인은 “공작정치와 거기에 부화뇌동한 후보를 묶어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벼른다.

정 후보를 비롯한 범여권이 타깃이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공격의 고삐도 바짝 죄는 양상이다. 이방호 선대본부장은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를 ‘흠 많은 사람’으로 때려온 상대편에 방어적으로 응수해서는 집권 초기까지 명예회복이 어렵다는 절실함의 발로다. 또 이회창 후보에게 대선에서 보수 지지층을 빼앗기면 총선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동반자 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예상되는 수순이다.

정 후보와 이회창 후보 진영에선 대선 이후 이명박 후보 공격플랜이 흘러나온다. ‘BBK 특검’ 정국을 총선 전까지 이어가는 한편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의석수가 많은 범여권이 첫 국무총리 인준부터 파상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범여권에는 “보수진영에 대권을 빼앗기고 총선까지 참패하면 언제 정권을 되찾아올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후보단일화는 대선보다 총선에서 더 유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당 문학진 총무본부장은 “여러 가지로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치열하게 싸운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 쪽도 ‘세 불리기’에 공을 쏟고 있다. 대선이 끝나면 한나라당에 분란이 일어나면서 보수진영 지형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심산이다. 한나라당을 처음 탈당해 이 후보 캠프로 간 곽성문 의원은 “조만간 추가로 의원들이 합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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