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 후보 공인 의 길 걷기로 결심한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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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첫 선거방송 연설에서 “살아갈 집 한 칸이면 족하다”며 “이 약속은 대통령 당락과 관계없이 반드시 지키겠다”고 밝혔다. 그가 후보 등록 때 신고한 재산이 353억8000만원이었으니 300억원 이상을 내놓는 셈이다.

정치인이, 그것도 대선 후보가 재산을 헌납하는 데 대해 논란이 없을 수 없다. 정치권의 지적처럼 검찰의 BBK 사건 수사 발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역풍을 가라앉히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린 시절의 가난을 뚫고 기업인으로 성공한 한 인간이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내놓겠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사실 그동안 이 후보를 둘러싼 위장전입·위장취업 파문과 BBK 사건 연루 의혹 등이 재산 축적 과정 또는 자녀들과 관련돼 있었다. 30대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돼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을 사적 영역에서 일했기 때문에 과거 우리 풍토로 보건대 흠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공인(公人)의 기준에는 미흡할 수 있다. 개발시대의 윤리와 지금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재산 헌납이 마치 잘못을 보상하는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재산을 많이 축적한 것은 결코 잘못일 수 없다. 축적 과정이 부당하지 않은 ‘청부(淸富)’는 오히려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게 정상적 사회다. 자칫 재산이 많은 이는 공직에 나갈 수 없다거나 공직에 진출하려면 전 재산을 내놓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런 사례는 한 번으로 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산 헌납이라는 명칭보다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사회 공익을 위해 출연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이 후보는 “앞으로 사소한 일에서부터 스스로를 더 엄격히 경계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이번 결단은 최고의 공인으로 나가기 위한 다짐행사로 봐 주면 합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