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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기행>"세계질서" 촘스키著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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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저명한 언어학자이면서도 일반인들에게는 날카로운 정치비평으로 더 널리 알려진 노엄 촘스키(66)교수가 최근 1945년 이후세계정치를 분석한『세계질서,과거와 현재』(원제 World Orders Old and New)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 출판부와영국 플루토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미국 MIT의 언어학 교수인 촘스키는 소련권붕괴 등 세계의 굵직한 사건들을 망라한 이 책에서『지금이야말로 서구국가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맹신을 버려야 할 때』라고 외치고 있다.
촘스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먼저 지난 40년동안 냉전체제가 미국으로 하여금 도덕성을 결여한 힘의 정책을 추구하는데 훌륭한 구실을 제공했다는 점이다.또 수십년동안 미국대외정책의 명분이 되었던 그 냉전체제가 붕괴되었 는데도 미국은「세계의 유일강대국」이라는 지위를 확고히 했다는 것이다.
냉전체제 붕괴후 실제로 미국은 군축협상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어느 국가도 도전하기 힘들 정도의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책은 세계정치사가 왜곡의 구렁텅이로 빠질 때마다 진실을 꿰뚫지 못하고 오히려 그 왜곡을 부채질한 저널리스트들의 기사까지 참고문헌 쪽수가 24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풍부하게 싣고있어 세계 유명 저널리스트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 다.
미국 대외정책의 기준은 오로지 자국이익뿐이라는 촘스키의 분석은 최근 또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쿠웨이트 위기에도 그대로 통한다.
지난달 이라크군대가 바스라 인근 사막에 야영을 하자 곧바로 미국 정치인들은 이라크가 쿠웨이트 재침공을 획책하고 있다고 떠들었다.그러나 그 당시 이라크군인 중에는 짝도 맞지 않는 군화를 신거나 누더기 군복을 걸친 군인들이 많아서 도 저히 침공군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았는데도 언론까지도 미국 정부측의 위기조장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군의 움직임을 빌미로 곧바로 쿠웨이트로 군을 파견했다.사담 후세인이 또 다시 쿠웨이트 침공을 획책하고 있어 동맹국인 쿠웨이트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러나 미국이 쿠웨이트위기를 부각시킨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이 자리잡고 있었다.미국은 특히 국제사회에서 對이라크 무역제재를 연장시킬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고 또 對이라크 무역제재가해제될 경우 유가하락으로 인한 시장혼란을 염려,이 라크의 호전성을 또 다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난 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전 이라크가이란과 8년 전쟁을 벌일 당시 미국의 對이라크 정책은 어떠했는가.조지 부시대통령이 나서서 사담 후세인을 훌륭한 정치인으로 치켜세우면서 對이라크 지원에 앞장섰다.언론도 그 때 사담 후세인이 중동의 미국국익 보호와 지역 안정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미정부의 도덕성을 문제삼지 않았다.
이렇게 볼때 이 책은 역사서이면서도 서구 여러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자행한「죄상」을 폭로하는 성질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정 치사 분석서인 이 책에서『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보이지 않는 손」이론으로 자유주의 경제이론의 거두로 불리는 스미스는 일찍이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아무리 좋은 체제라해도 개인이 독점이나 정부통제를 꾀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공익이크게 해를 입을 것을 우려했다.
촘스키는 스미스의 우려가 경제적인 면에서보다 국제정치판에 더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촘스키는 언어학 연구사에서 혁명으로 평가받는 언어학 분석체계인 변형생성문법이론의 창시자로 통하는 인물이다.베트남전 당시 반전운동으로도 유명한 그는 전문분야인 언어학관련책 외에도 미국과 제3세계의 파시즘 등 세계 정치를 분석한 책을 많이 펴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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