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념 어린 옛 요리 연구 ‘모전여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문헌으로만 전하는 옛날 음식을 현대음식으로 풀이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사발이나 동이처럼 정확하지 않은 계량 단위를 사용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음식과 비교해가며 연구했습니다. 평생 궁중음식을 연구하신 어머니의 노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60·사진)원장.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떠난 궁중음식의 대가 고(故) 황혜성 선생의 큰딸이다. 황 선생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는 등 최근 1년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단다.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지정을 둘러싸고 문화재위원들 사이에 말이 많았답니다. 딸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모순이란 얘기까지 나왔대요. 하지만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존경하는 스승의 맥을 이을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궁중음식의 현대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는 40여년 동안 궁중음식 연구에 몸 바쳐온 전문가답지 않게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어릴 적엔 음식에 별로 관심은 없었어요. 어머니께서 이 길을 강요하지도 않았고요.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지요. 결국 그 공부가 나중에 음식의 재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긴 했지만요.”

궁중음식 대가의 장녀로 자연스럽게 전통음식을 접하긴 했어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어머니의 조교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란다.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흥미가 더해져 식품공학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전통음식 연구에 평생을 바친 스승의 노고를 치하 드리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딸자식을 이끌어주신 데 대해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산가요록(山家要錄)』을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풀이하는 작업에 손을 댄 거죠. 꼬박 5년이 걸렸습니다.”

산가요록은 조선시대 어의 전순의가 1450년께 집필한 궁중 생활백서다. 그중에 요리 부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조리기록으로 꼽힌다. 한씨는 산가요록 해제본을 발간해 7일 오전 11시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출판 기념회를 연다. 지난 가을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황혜성·한복려 모녀의 제자들이 마련한 행사다.

유지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