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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생각 쳐버리는 한국 선불교에 쇼크 받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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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 ‘고향’을 찾은 기분이었죠.” 푸른 눈의 외국인 스님이 4일 처음으로 불교 조계종단 포교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스위스 로잔의 법계사 주지인 무진(58·無盡)스님이다. 이날 서울 인사동의 사찰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자, 어서 잡사”라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무진 스님의 국적은 영국과 캐나다.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이라크, 스위스, 나이지리아, 영국 등을 옮겨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늘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죠. 바로 ‘왜 사는가’였어요.”

그러다 싱가포르에서 처음 불교를 접했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근처의 절에서 불교를 배우는데 느꼈죠. 불교는 ‘자유인’이 되는 길이구나. 그래서 스리랑카로 가서 출가했어요.” 그게 27세 때였다.

종교가 없는 부모님은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어머니는 “여자인데 머리도 깎아야 하고, 옷 색깔도 마음에 안 든다. 이왕이면 좀 더 멋진 종교를 가지지 그러냐”고 얘기했을 정도다. 무진 스님은 스리랑카와 인도의 수도 사원을 오가며 10년을 보냈다. 거기선 사마타와 위파사나 등 남방불교의 수행법을 따랐다.

그러다 스리랑카에서 한국 스님을 만났다. 성철 스님의 제자인 원명 스님이었다. 그는 물었다. “한국 불교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원명 스님이 영어로 대답했다. “Everything is perfect(모든 것이 완전하다).” 무진 스님은 ‘쇼크’를 받고 말았다.

“소승불교는 무겁거든요. ‘모든 것은 고통이다(Everything is suffering)”를 늘 되뇌거든요. 그런데 한국 선불교는 그걸 훌쩍 뛰어넘어요. 논리적인 접근을 뛰어넘는 겁니다. 칼로 우리의 ‘생각’을 쳐버리는 거죠. 논리로 접근하는 한 고통을 벗어날 수 없거든요.”
그는 35세 때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성철 스님을 찾아가 ‘마삼근(摩三斤, 중국 동산선사가 부처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고 내 삼베옷 무게가 세 근이라고 답한 데서 유래)’이란 화두를 얻었다.

2년 후에는 석남사 인홍 스님에게서 비구니계를 받고 선방으로 들어갔다. “스리랑카에선 벽에 기대서 앉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기대지않고 앉대요. 처음에는 힘들었죠.” 그는 간화선을 통해 부처님의 길이 참으로 ‘행복한 길’임을 절감했다고 했다.

무진 스님은 포교 방식도 여유롭다. “불자가 안 되면 어때요. 상관없어요. 그냥 불교의 수행법이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니까 함께하는 거죠. 기독교인이면 또 어때요. 인연 따라가는 거죠.” 그는 2005년에 어머니의 유산과 동생이 보태준 돈으로 스위스 로잔에 법당을 세웠다. 수시로 스위스와 싱가포르도 오간다. 싱가포르 교도소에서 포교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회도 열고 재소자와 개별 상담도 갖는다. 스위스에선 한국문화축제를 여는 등 한국불교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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