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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5.식구6명 완구주물공장 정병순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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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병순 사장은 나와 고교 동창이다.우리는 졸업 후 35년만에처음 서로 만났다.그것이 3년전 일이다.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았고 얼굴도 잘 알아 볼 수 없었다.
친구를 알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다.악수를 나누려고 어색하게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바로 그 손이 나의 눈을 끌었다.심한 노동으로 그의 손은 상당히 변형되어 있었다.
모임에 나오느라 물과 비누로 씻는 것으로는 급히 깨끗해질 수없을만큼 깊게 작업 때가 박혀 있었다.
그후 나는 청파동에 있는 그의 공장을 한번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다섯명의 직원에,월 매출 2천만원을 올리는 영세기업의 주인이다.그런 그에게서 나는 거의 오기(傲氣)로 가득 찬범할 수 없는 당당함을 느낀다.동시에 그는 충분하게 겸손하다.
어떻게 하여 이런 오기와 겸손이 그의 몸 속에서는 한 벌의 쌍가락지처럼 공존하게 되었을까.이 인터뷰를 기회로 나는 좀 자세하게 그의 말을 듣는다.
『나는 대학을 13년 만에 졸업했다.학교 다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공장에 다니면서 가족의 생계비와 내 학비를 벌었다.전공은 기계공학이었다.기름쟁이 생활 첫 발은 마산에서 진일철공소견습공으로 디뎠다.대학을 졸업하던 무렵에는 부산에 있는 금성사계열 공장에서 금속 가공 숙련공에다 엔지니어를 겸한 셈이 되어있었다.』 그의 기능을 겸한 기술자 자격 때문에 회사에서 진급은 빨랐다.생산부장.기술부장.공장장을 거치고 기획실장이 되었다. 다른 공장에서 기술 자문을 해 오는 일도 많았다.그는 74년에 자영업자로 독립했다.
『1차 오일쇼크로 문을 닫는 회사가 속출하고 있던 때였다.다니던 회사의 사장에게 내가 지금 독립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지금 나가면 망하는게 아니라 굶어 죽는다고 했다.내 생각은 달랐다.나는 그 회사에서 직원으로서는 올라갈데까지 다 올라가 있었다.내가 내리는 결정이 간섭을 받는 월급쟁이 생활에서 해방되려면 그런 때가 최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지금 이 어려운 상황에서 물 속에 뛰어들어 살아 남기만 한다면 무언가 결과가 있을것이다,이것이 그때 나를 사로잡은 집념이었다.아마 젊은 기백이었겠지.』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정병순 사장이 내장(內藏)하고 있는 모순으로서 오기와 겸손 말고도 담대(膽大)와 소심(小心)이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선반한 대를 사고 일거리를 얻었다.부산에서 다른 사람의 공장 한모퉁이에다 일터를 벌였다.일거리는 무기 부품의 가공이었다.
당시는 마침 무기 국산화 열기가 불고 있던 때여서 다른 분야가 모두 극심한 불황 속에 허덕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사장의 일거리는 선반 한대를 주야로 돌리는 것으로는 다 못 해낼만큼 늘 넘치고 있었다.
그의 생활 철학 가운데 하나는 직장과 숙소는 최단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월급쟁이로 있을 때는 공장 담과 붙은 집을 사 살았을 정도다.
독립을 하고는 아예 공장 안에 야전침대를 놓고 거기에서 살았다. 『그렇게 몇년 했더니 물건은 좋은 소리 듣게 만들고 돈은제법 모았는데 건강이 말이 아니게 되고 말더군.앓아 눕게 되었지.한동안 요양하며 시간을 보냈어.내 자신을 그만 불량품으로 만들고 말았던거라.』 그는 부산에서 봇짐을 싸고 지금 일하는 서울 청파동의 한 허름한 건물에 30여평의 자리를 세 얻어 정밀주물공장을 차린다.78년이었다.
『그 당시는 기계공업과 기술자 사장들이 결딴나고 있던 때였다.오늘 이 공장이 망하면 내일은 저 공장에서 부도가 났다.기계공업육성자금.ADB자금.대일(對日)청구권자금등을 빌려 신설하거나 확장한 회사들에 거치기간이 지나고 상환이 돌아 오니까 90%이상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이던 기업체들마저 여지없이 날아가는것이 그때 사정이었다.나는 몸이 아픈 가운데서 매일 들려 오는잘 아는 기계업체들의 부도 소식을 들으며 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심했다.그 결과 결정한 것이 지금 하고 있는 정밀주물이다.그리고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살아남기 전략이다.』 정사장의 공장,보람사에서 만드는 것은 축소형(scale model)완구의 주물부품이 주종목이다.
축소형 완구란 실제 움직이는 기차.배.자동차등을 크기만 줄여놓은 극히 고가품이다.완성된 완구 기차 가운데 비싼 것은 수출가가 한대에 2천달러나 나간다.소형 자동차의 수출가와 맞먹는 가격이다.
요즘 수많은 중소기업이 부도를 막지 못하고 도산하고 있는 점에 대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그는자기 생각이 틀린 생각일 것이라고 전제해놓고 말을 시작한다.일반화하는 것은 철저히 거부하면서 자기의 부도를 내지 않기 위한공장 운영 방식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그의 말은 차라리 너무나 자신감에 넘치는 웅변으로 변해 간다. 『내가 은행돈을 빌려다 쓰면 그것은 그 번쩍거리는 은행을 내가 먹여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내게는 아직 은행을 먹여 살릴힘이 없다.그런 때가 오기 전까지는 나는 절대로 은행 돈을 안쓸 것이다.그러니 나는 부도를 낼 염려가 없다.우 리 이 공장을 봐라.외양간 같지 않느냐.은행은 여기에 비하면 대궐이다.중소기업,특히 영세기업이 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채다.
돈이란 누구나 쪼들리게 마련이다.부채가 곧 자산이란 말은 장부상으로나 맞고 대기업에나 맞는 말이다.천만의 말씀이다.부채는독(毒)이다.돈에 쪼들린다고 독을 마셔? 살려는 생각이라면 쪼들릴수록 안 마셔야지.
특히 제조 영세기업은 조급한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제조업은 과일 나무를 기르는 사업이지,채소 기르는 사업이 아니다.여러 해가 걸린다.조급한 생각에 빠지지만 않으면 은행 돈 안쓰고해나갈 수 있다.이것이 그 첫째다.둘째는 자네 작전상 후퇴라는말이 왜 나왔을까를 생각해 봤나.』 ***負債는 毒과 같아 이쯤에서 정사장의 목소리는 완전히 높은음자리표를 잡는다.
그의 소기업 경영 철학이 폭포처럼 쏟아진다.신념,그 신념을 정당화하는 논리,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역동적인 경험,이 세가지가 어우러져 만든 철학이다.
『나는 이 말을 늘 생각해 보곤 한다.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했다.이 말만큼 어리석은 말은 없다.불가능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업을 해야 된다.망하면 안된다.
스스로 정리해야 된다.줄여야 할 때는 줄여야 한다 .키울 때는조금씩 키워야 한다.자기의 능력을 하나 하나씩 돈 세듯이 세어보면서 말이다.
나는 현재 우리 공장에 있는 기존 밀링등 가공기계를 놀리고 있다.주조해 자르는 것으로 일을 끝낸다.그 이상 가공은 일거리는 없지 않지만 부가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다.
소기업은 돈이 눈에 보인다고 다 주워서는 안된다.관리가 못 따라가고,생각하지 않은 관리비가 부가가치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절 판매활동을 하지 않는다.수금도 나가지 않고 외상 판매도 하지 않는다.제품을 배달해 주는 일도 없다.나는 사무실도 없고 사무원도 없다.
사무실 일을 아예 없앴다.고객들에게는 생산책임자인 내가 공장에 언제나 있음으로 해서 그들이 얻는 편리,품질상의 확실성을 설명해 주고 그 대신 사무는 당신들이 봐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우리 공장은 전형적인 소량 다품종 생산 공장이다 .고객들은 나의 이 말을 받아들여 내 요청대로 해주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종업원들에게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또 종업원이 근무시간을 못 채우는 경우가 생기면 월급날전 언제든지 그 시간만 채우면 된다.회사를 퇴직하면 세번까지 어느 때나 복직이자동적으로 가능하다.
***20년된 헌옷 입어 그는 20년이나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닌다.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옷이 아까워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그는 다른 종업원이 출근하기 두시간전인 6시에 출근한다.작업 준비를 맡아서 한다.
그가 말을 계속한다.
『나는 정책을 논할 자격은 없는 사람이다.그러나 소형 제조업이 도산하는 세번째 원인은 정부 정책과 국민성에 있다.우리나라사람들은 살림집에 관해서도 외관과 평수를 가장 중시한다.기업도소기업은 전망이 없다고 여긴다.절대로 그렇지 않 다.
소기업이야말로 가장 비전이 있는 기업이다.자식들을 하이칼라로만들어 대기업에 월급쟁이로 다니게 하는 것은 자식을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소기업에서 손에 기름 묻히고 일하다가 독립해서 나가고….이런 식으로 경제가 번식돼 가야 한다.
자영하는 소기업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없다.따라서 정부 정책도 자영업을 가장 장려함이 마땅하다.영세 제조업이 생산하는볼트 너트 하나,핀 하나,이런 것이 없으면 회사가 안되는 것이아니라 나라 전체가 안된다.
***小기업은 푸대접 지금 소기업들은 숨바꼭질하듯 쫓겨다니고있다.공장을 마련해 놓으면 도시계획이다,주택지구개발이다 해서 쫓겨 나간다.쫓겨 나가서 지어놓으면 또 쫓겨 나간다.』 정사장은 보람사 공장을 내년에는 인천으로 옮기기로 계획하고 있다.자기 소유 땅 3백여평에 자기 소유 공장을 짓는다.17년간의 청파동 시절을 끝내려는 것이다.청파동은 일제 때는 서울역과 연계된 화물 운송 관련 소기업이 밀집돼 있던 곳이다.
우마차 바퀴나 말굽 따위를 만드는 대장간 등을 위주로.지금은인쇄.사출.금형 관련 소기업 공장 약 3백개가 이 주변에서 가동하고 있다.
정사장의 공장이 세들어 있는 약 2백평 대지 건물안에는 다섯개 공장이 옹기종기 가동하고 있다.이 청파동이 차츰 이젠 서비스업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정병순씨가 말을 잇는다.
『소형 제조업은 무조건 3D업종이 되어 있다.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나 일하려고 한다.나는 절대로 외국인 노동자는 쓰지 않는다.대기업이라면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소기업은 기업이기 전에 나라의 기초다.외국인 노동자를 쓰면 소기업을 하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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