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국가경영 엔진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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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은 90만 공무원의 능력을 이용하여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그러나 대통령과 공무원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놓여져 있다.첫째는 시스템에,둘째는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구도를 잡지않고 그린 그림이 휴지에 불과하듯 구도없이 굴러가는 우리 사회는 지금 불안과 혼돈과 퇴보의 길을 내달리고 있다.
선진국 사회는 아이디어뱅크에 의해 운영된다.공무원은 두뇌집단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행정가적 수완을 발휘할 뿐이다.
선진국 행정부의 과단위에는 3~5명의 공무원이 있다.이들은 스스로 정책과 제도를 만들지 않는다.전문성과 객관성 을 위해서다.공무원 수가 적은 반면 이들에게는 과제비가 할당된다.워싱턴 DC 벨트웨이에는 5백여개의 사설연구소가 있다.이들에게는 「벨트웨이 산적」이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국가 예산을 벌어내간다는 뜻이다.미국 공무원들은 하루 평균 4시간씩 브레인들과 토의를 갖는다.이러한 토의 생활을 10년간하면 공무원의 능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향상된다.이러한 미국공무원과 한국공무원이 마주앉아 협상을 하게 되 니 한국의 이익이 반영될리 없다.
자기가 운용할 제도를 자기가 만들면 그 제도는 아전인수격으로만들어 진다.객관성을 위해 미국 공무원들은 제도와 정책을 자기손으로 직접 만들지 못한다.
한국정부의 과단위에는 15~20명의 공무원이 있다.이들은 외부 두뇌와 접촉하지 않고 1년을 보낸다.
현장에 나가 문제점을 발굴해내려 하지도 않는다.현대적 경영관리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눈치와 절차와 형식으로하루 하루를 보낸다.
과천의 어느 한 부서에는 서기관과 사무관이 8명이나 모여 있다.신문사나 잡지사 같으면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들 8명이 하고 있다.문서의 표현과 한문의 혼용 정도를 놓고 시간을보낸다. 이러한 생활을 10년간 하게되면 공무원의 두뇌는 형편없이 퇴화된다.이들이 만든 제도와 정책은 자연 함량미달에다 아전인수격일 수밖에 없다.한국사회는 이러한 제도와 정책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사회에 사고와 병리현상이 만 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사회를 아이디어뱅크에 의해 경영할 것인가,아니면 계속해서 퇴화돼가는 공무원에 의해 경영할 것인가,지금 정부는 양자중 택일을 해야 한다.아이디어뱅크에 의해 경영하기를 바란다면 방법은 간단하다.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고 남는 돈으로 사 설연구소를 이용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사회에 사설연구소가 없다.정부 예산의 1~2%를 사설 연구소에 풀겠다고 발표하는 순간부터 외국에 나가있던 한국두뇌들이 모두 들어와 사설연구소를 차릴 것이다.
부모들이 논팔아 키운 한국의 두뇌들은 이제까지 한국사회에 기여할 길이 없어 모두 미국이 활용해 왔다.한국이라는 나라는 기껏 인재를 양성해서 미국에다 바쳐온 것이다.문민정부가 군정과 다르려면 바로 이점이 달라야 한다.
카메라가 출동해서 사회적 병리현상을 조명해 주었다.
어떤 것들은 그 다음날 바로 시정됐지만 또 어떤 것들은 여러차례 조명해줘도 시정되지 못했다.
일개 장관의 소관사항이면 금방 시정이 됐지만 수돗물 문제처럼여러 장관이 관여돼 있는 소위 시스템적인 문제는 조금도 시정되지 못했다.여러 장관을 통할해야 하는 대통령이 「일꼬」를 틀줄모르고 있는 것이다.시스템경영 능력이 없기 때 문이다.
***家臣보다 總和필요 월남에서 한국군 장군들은 공관을 운영하고 있었다.1개 공관에는 30여명의 식구들이 있었다.남남끼리모여 장군을 모실 때에는 공관 분위기가 화목했었다.그러나 어느날 장군과 함께 근무했다는 상사 한사람이 들어오게되자 공관 분위기가 미 묘하게 돌아갔다.
그후 장군의 처남뻘 되는 하사관 한사람이 또 들어오자 공관의분위기는 결정적으로 깨져 버렸다.나머지 식구들은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며 형식적으로만 근무했다.
주월 백마부대에는 이와는 대조적인 사단장이 있었다.친동생이 소위를 달고 자기 사단에 파월돼 왔다.그러나 그는 원칙에 따라동생을 전방으로 보냈다.얼마후 그는 전사한 동생의 시신을 맞이해야 했다.
이 두개의 모델중 대통령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지금의 대통령 주변은 수많은 가신들로 채워져 있다.그들 몇사람은 좋겠지만90만 공무원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관직이 선거전의 전리품이아닌 이상 가신들은 국가의 장래와 그들이 모시 는 주인을 위해하루빨리 자리를 비워야 한다.
국가는 몇사람의 유능한 가신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90만 공무원의 총체적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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