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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치료 교과서 바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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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14면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센터 박승정(심장내과) 소장과 김영학 교수, 김원장 전임의(오른쪽부터)가 환자의 심혈관 조영술 사진을 보며 환자의 질병 상태를 확인한 뒤 치료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심장은 인체의 엔진이다. 주먹만 한 크기의 근육 덩어리가 쉴 새 없이 뛰면서 온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낸다. 심장이 작동하려면 피가 필요하다.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심장동맥’은 세 개인데 심장을 뒤집었을 때 왕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관상동맥(冠狀動脈)이라 부른다. 이 동맥이 막히면 심장이 멎는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센터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센터는 365일 심장처럼 한시도 멈추지 않고 팔딱팔딱 뛰며 환자의 심장동맥이 막히는 것을 막고 있다. 의사와 전문간호사 40여 명의 대부분은 응급환자가 생기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산다. 주말에도 6~7명의 의료진이 상주한다. 박승정 소장 집도 병원 옆에 있다. 그는 병원에 살다시피 한다.

심장병 치료법은 약물, 내과적 시술(풍선 또는 그물망 치료), 수술 등인데 이 센터는 내과적 시술 분야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이 센터는 1986년부터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는 승모판이 좁아진 협심증 환자의 사타구니 동맥으로 풍선을 집어넣어 심장동맥을 넓혀주는 시술을 선보였다. 이 시술법이 나오면서 ‘수술이 최선’이라는 기존 관념을 바꿔놓았다.

2003년에는 임상의학 최고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협심증 환자의 심장동맥을 항암제와 면역억제제를 바른 그물망으로 넓히면 혈관 내벽이 다시 자라 재시술받는 비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의사 중

이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연구진은 박 교수팀이 처음이었다.
센터의 최근 가장 큰 관심은 좌주간부(Main Left)가 막히는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 좌주간부는 심장동맥이 갈라지는 입구이기 때문에 이 부위가 막히면 다른 부위가 막혔을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이 부위의 협심증은 증세가 심해지면 심근경색이나 급사(急死)로 이어질 위험이 다른 부위보다 훨씬 높다.

영국 인포마헬스케어 출판사는 지난해 이 센터가 저술한 '좌주간부 질환'을 의사용 참고서로 발간했다. 이 질환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 센터는 1997년부터 좌주간부가 막힌 환자에게 수술 대신 사타구니를 통해 그물망을 넣어 혈관을 넓히는 시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가슴을 모두 열어야 하고 7~10일 입원해야 하지만 그물망 시술을 받으면 흉터가 없고 이틀만 입원하면 된다”면서 “좌주간부 중 특정 부위가 막힌 환자는 내과적 시술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전 교과서에는 좌주간부가 막히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수술이 약물치료에 비해 월등한 효과가 있다는 뜻이지요. 내과적 시술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

이 센터는 최근 이탈리아 성 라파엘 과학연구소, 네덜란드 에라스뮈스 메디컬 센터 등 유럽 5개 의료기관과 함께 좌주간부가 막혀 그물망 시술을 받은 147명의 치료 결과를 분석했다. 사망률은 2.7%, 2년 내 재시술 비율은 0.9%로 나왔다. 이는 수술했을 때의 사망률 2~3%, 재시술 비율 1~2%보다 낮았다. 연구결과는 이 분야 최고 학술지 『미국 순환기 학회지』에 실렸다.

박 교수는 “좌주간부가 막혔을 때 내과와 흉부외과 의사가 면밀히 검토해 수술과 내과시술 중 어느 방법을 쓸지를 선택해야 한다”면서 “무턱대고 내과적 시술을 하면 위험한데 일부 의사는 그래서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협심증, 심근경색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도 우물쭈물하다가 병원에 늦게 오는 환자가 많다고 걱정했다. 협심증 증세는 사람에 따라 다르므로, 특별한 외상 없이 가슴이 아프면 일단 병원의 심장내과에서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초기 협심증의 증세는 갑자기 운동할 때나 차가운 날씨에 외출할 경우, 흥분했을 때 10~15분 정도 나타나며 앉아서 쉬면 2~3분 뒤 사라진다.

주로 가슴 한복판이 아프며 팔이나 목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통증은 ▶무엇인가가 짓누르는 듯하거나 ▶빠개지는 느낌이 들고 ▶고춧가루를 뿌려놓은 듯 따끔따끔하거나 ▶숨이 차는 식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 전혀 통증이 없으면서 팔이나 목이 아프기도 한다. 이를 방치하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가슴이 아파온다.

한국과 일본에는 ‘변이형 협심증’이라는 특수한 협심증 환자가 적지 않다. 이는 흡연·폭음·과로·스트레스 등과 관련이 있으며 새벽 또는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령의 노인이나 당뇨병 환자는 통증 없이 협심증이 진행되기도 한다.

박 교수는 “만약 가슴이 20분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크므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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