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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갈등 시대] 上. 개발-보전, 끝없는 '외곬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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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회 곳곳에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전북 부안 사태에서 보듯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제.사회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개발과 보전의 조화''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이 유행한 것도 10년이 넘었지만 구호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갈등이 왜 생기고 치유책은 뭔지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놓고 6년째 논란만 무성한 채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경인운하 건설 논의도 4년째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현 정부가 '국민소득 2만달러'와 '동북아 중심국가'를 지향하면서 성장.개발이 더욱 탄력을 받는 듯한 모습이다.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이전 추진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는 "1990년대 들어 사라지는 듯했던 개발주의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재등장했다"며 "환경 갈등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지난해는 신(新)개발주의의 원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국내 건설 수주액이 1백조원을 넘기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23.1%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 환경은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 밀도, 엄청난 오염물질 배출로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개발-환경 갈등은 더 늘어나고 사회적 비용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토연구원 김선희 박사는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소득 1만~1만5천달러 시대에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게 마련"이라며 "당분간 환경을 둘러싼 갈등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주대 김병완 교수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환경단체와의 대립구조가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 갈등이 생기나=환경단체들은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오히려 개발의 면죄부 역할을 한다고 비판한다. 이 제도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얘기다.

개발사업이 본격화되기 전에 앞당겨 환경성을 점검한다는 취지에서 2000년 도입된 사전환경성검토제도도 정작 큰 개발사업은 걸러내지 못한다는 게 환경단체의 불만이다. 정부가 뚜렷한 목적 없이 개발사업을 하는 것도 문제다. 시화호를 '죽음의 호수'로 만든 정부 각 부처는 책임 미루기에 급급했다. 새만금 간척도 달라진 상황에 맞는 개발 목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단체도 비난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새만금 간척사업.사패산 터널이 대표적 예다.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되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추진한 사업인데 뒤늦게 환경단체가 반발한다고 물러서기는 쉽지 않다. 세민환경연구소 홍욱희 소장은 "환경단체도 반대할 것만 반대해야 한다. 대안없이 무조건 브레이크를 걸 것이 아니라 좀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재자가 없는 것도 갈등을 키운다. 특히 정부와 환경단체가 당사자인 대규모 개발사업에서는 중재자가 없다. 지역주의나 개발주의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 풍토에서 국회도 중재자 역할을 못한다.

전문가들도 갈등을 일으키는 데 한몫한다. 환경 피해를 예측하거나 개발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할 때 처한 입장에 따라 정반대되는 주장을 내놓는다. 새만금에 건설될 담수호의 수질이 농업용수로 적합하냐, 경인운하 건설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이 있느냐 등에 대해 끝없는 논쟁을 벌인다. 민.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1년간 연구해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시민단체.전문가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윤서성 원장은 "투명한 정책결정, 충분한 의사소통, 인간적인 신뢰관계 구축 등이 바탕이 돼야 사회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지난 12일 '갈등관리기본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갈등 조정 전문가의 양성, 교육프로그램의 마련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예방책보다는 '대증요법' 위주다.

전문가들은 정책결정 초기 단계부터 주민.시민단체를 참여시켜 갈등을 예방하고 시민단체들도 대안 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은 "모든 공무원이 갈등 조정 마인드를 갖도록 갈등 예방과 조정에 관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단체.보험회사 등 민간부문의 갈등 조정 기능을 확대해 사회 전반에 갈등조정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한 주요 국책사업은 과감히 밀고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강찬수 기자<envirepo@joongang.co.kr>
사진=부안 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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