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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감면' 공약에 아파트 거래 실종 "내년 세금 줄 것" 급매물마저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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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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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 56㎡형(17평형) 집주인인 김모(52)씨는 12억6000만원에 내놓은 아파트 매물을 급히 거둬들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양도세 인하 공약이 계기가 됐다. 김씨는 “이명박·이회창 후보도 아닌 여권 후보까지 양도세 인하를 약속하는 상황이라면 내년 양도세 감면은 기정사실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다시 집을 내놓을 생각이다. 강남구 대치동 성공공인 정명숙 실장은 “양도세 인하 이야기가 나오면서 급매물을 회수하거나 매도 호가를 크게 높이는 바람에 아파트 거래가 실종된 상태”라고 말했다.

대선을 20일 앞두고 유력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으로 인해 부동산 거래가 뚝 떨어졌다.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면서 값싼 아파트 기대심리로 아파트 거래는 얼어붙은 상태다. 여기에 대선 공약으로 양도세 인하가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6억원 이상의 고가 매물마저 사라져 아파트 거래 위축을 부추기고 있다.

◆양도세 인하되나=초미의 관심사는 양도세 인하다. 대선 유력 후보들이 종합부동산세는 역풍을 우려해 건드리지 않으면서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완화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투기와 무관한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완화를 공약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아예 양도세 완전 면제(9억원 이하)를 내걸었다. 정동영 후보는 25일 “지난 5년간 민심이 차가워진 가장 큰 이유는 세금 문제”라며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감면을 발표했다. 장기보유 특별공제율을 올려 3년 거주 때 12% 공제해 주고 매년 4%포인트씩 공제율을 올려 20년 동안 살면 양도세를 80%까지 깎아준다는 것이다.

◆집주인과 매수자의 ‘동상이몽’=부동산 시장은 대선 공약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부동산 채은희 사장은 “다주택자들은 이미 매물을 정리했거나 장기전으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집을 한 채 가진 집주인의 매물만 간간이 거래됐는데 양도세 감면 얘기가 나오면서 1주택자 매물까지 쏙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강남 3개 구의 아파트 거래는 지난해 10월 4450건에서 9월에는 935건으로 떨어졌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15년 거주 때 공제율이 45%지만 이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1억8000만원에서 사서 20년간 보유한 뒤 11억원에 팔 경우 지금은 양도세를 7020만원 내야 한다. 만약 정 후보 공약대로 공제율 85%를 적용하면 양도세는 1358만원으로 줄어든다. 각 후보들은 또 취득세와 등록세도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년에 집주인들의 희망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최근의 거래 급감은 청약가점제와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청약자들이 값싼 아파트 공급을 기대하면서 기존 아파트를 외면하기 때문”이라며 “값이 뚝 떨어지거나 대출 규제가 확 풀리지 않는 한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활발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평균 6.55%(10월 기준)로 4년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다시 불붙는 부동산 세금 논쟁=일부 시민단체들은 대선을 맞아 양도세 인하, 재건축 완화 등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이 부동산 안정 심리에 악영향 미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토지정의 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양도세 완화는 토지불로소득 환수 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부동산 투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조세형평성을 감안하면 불로소득인 양도차익에 대한 현행 세율이 지나치다고 보지 않는다”며 “특히 양도세 인하는 부동산 투기 심리를 다시 자극할 우려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시각이 더 많다. 유엔알컨설팅의 박 사장은 “보유세(재산세·종부세)를 무겁게 물리는 대신 양도세를 경감해 주는 방식으로 퇴로는 열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창희·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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