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그 많던 달러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자금 갈증에 목이 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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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금융시장은 미국의 주식시장과 연계돼 있다. 미 증시가 떨어지면 외화 차입이 어렵고 조달 비용도 높아진다. 우리은행의 원화·외화자금 조달을 책임진 박 부장에게 이보다 나쁜 소식은 없다.

 7시30분. 그는 서울 회현동 본점으로 출근했다. 곧바로 담당 부부장 3명을 불러 30분간 팀회의를 열었다.

 “오늘 조달해야 할 원화는 5000억원, 외화는 6000만 달러입니다.” “현재 외화 채권시장에서는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습니다.” 부부장들의 보고에 박 부장은 가슴이 철렁하다. 외환위기 이후 요즘처럼 돈 구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은 없다.

 “여름까지만 해도 돈 걱정은 안 했어요. 불과 몇 분이면 당일 필요 자금은 충분히 조달했는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뒤부터 갑자기 자금시장이 어려워졌어요.” 박 부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필요 자금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당일 필요 자금을 못 채웠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음날 부족분을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

 박 부장은 컴퓨터로 매 시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 금액을 챙긴다. 주식을 판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꾸면 그만큼 시중에서 달러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열흘 넘게 주식을 팔아 치우던 외국인들이 이날은 오전부터 순매수에 나서면서 박 부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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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일과를 마친 그는 11시40분 서울 북창동 한 일식집으로 향했다. 한국은행이 주재하는 시중은행 국제부장 간담회가 열렸다. 1시간30분간의 간담회가 이어졌지만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요즘 한은과 시중은행은 티격태격한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이 심해지면서 은행의 해외채권 발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발행 금리가 6월에 비해 4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5월 10억 달러를 조달한 뒤 11월에도 5억 달러를 조달할 예정이었으나 무기한 연기했다. 이로 인해 시중에는 달러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박 부장은 전화로 다른 은행 실무 담당자와 정보를 주고받았다. “지난주부터 서울 시장에 달러 품귀 현상이 나타나자 싱가포르·홍콩에서 핫머니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들이 수억 달러씩 들고 와 위험이 작은 외환 차익거래를 통해 거액을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은행들은 한은이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풀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병찬 한은 국제국장은 “시장에서 생긴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해야지 외환보유액을 활용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후 3시30분 금융시장이 마감하자 박 부장은 더 다급한 문제에 부닥쳤다. CD 금리가 크게 오른 것이다. 이날 91일물 CD 금리는 전일 대비 0.02%포인트 올라 5.53%를 기록했다. 2001년 7월 4일(5.53%) 이후 6년4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그는 “요즘은 예금 이탈도 심해 올 초만 해도 CD 발행과 같은 차입으로 한 달에 5000억원 정도 조달하면 됐는데 지금은 그 규모가 1조원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5분도 못 쉬고 곧바로 신규자금협의회에 참석했다. 외화나 원화 대출 중 꼭 필요하지 않은 케이스를 골라내는 회의다. 박 부장은 이 자리에서 신청된 대출의 20%를 제한했다. 오후 6시를 지나면서 그는 이날 필요 자금을 채운 뒤에야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간단히 저녁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분석했다. “서브프라임 파문이 내년에 더 심하다는데….” 오후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박 부장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김준현·김창규 기자

◆CD 금리=은행에서 만기 30~270일로 발행하는 단기 금융상품인 ‘양도성예금증서’의 금리. 대출해 줄 때 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보통 CD 금리에 신용도·담보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금리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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