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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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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흔히 간과하는 비용이 있다. 원하는 물건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보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간과 노력이 바로 탐색비용이다. 대충 아무 물건이나 괜찮고 값이 조금 비싸도 상관하지 않겠다면 탐색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과 품질의 차이에 민감한 소비자라면 탐색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문제는 탐색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다. 탐색비용이 많이 들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없다. 그런 물건을 파는 곳을 찾느라 무한정 시간을 허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감당할 만한 탐색비용의 범위 내에서 적당한 품질의 제품을 웬만한 가격에 살 수밖에 없다. 탐색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면 아예 구매를 단념하는 경우도 생긴다.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없어 물건 사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건을 사지 못한 소비자도 손해고, 물건을 팔지 못한 상인도 손해다.

근대 이후 시장경제의 발전은 탐색비용을 줄여 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인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고, 독특한 간판으로 손님을 끌고, 신문·방송·인터넷에 광고를 하는 것들이 모두 탐색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선거에서 후보를 골라야 하는 유권자들도 탐색비용을 치른다. 유권자들은 연초부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들의 부침과 각 당의 혼탁한 당내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종 후보가 과연 누가될지를 힘겹게 가늠해야 했다. 품질과 가격을 따지기 이전에 도대체 어떤 물건이 나올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탈당과 돌출적인 독자출마, 합당과 후보 단일화 논의는 유권자들의 탐색비용을 더욱 늘려 놓았다.

이제 후보들이 등록을 마침으로써 마침내 대선의 장이 섰다. 대선 시장에서 탐색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마케팅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후보들은 지금부터 대선 시장에 각자 좌판을 펴고 손님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대선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의 품질과 가격을 확실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후보들은 변변한 공약집 하나 내놓지 않은 채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자기 물건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밝히지 않고 남의 물건의 흠집만 탓하고 있는 격이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고르기가 더욱 어렵다.

하자 있는 물건이라면 환불이라도 하겠지만 대통령은 한 번 잘못 뽑으면 환불할 수도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