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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7대 대선, 결국 차선의 선택밖에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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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두 줄기다. 먼저 국가의 품격을 재건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이 진흙땅에 내던진 대통령 리더십을 추슬러야 한다. 설익은 이념과 편협한 증오로 갈라진 나라를 다시 꿰매야 한다. 경제와 민생도 시급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불경기·실업·양극화·사교육에 눌려 있는 민생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시대적 의미가 더욱 심장하다.

그런데 유권자는 착잡하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다 우울하다. 보수의 제1 유력 후보는 도덕적으로 부실투성이고, 대타 후보라는 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기심으로 원칙을 저버렸다. 진보는 실용이란 이름으로 후보를 단일화하겠다며 요란을 떨더니 지분싸움 끝에 서로 등을 돌렸다. ‘민주평화개혁 세력의 재집권’이라는 구호는 결국 사탕발림이었다. 급진진보 민노당은 거듭된 실수와 과격으로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국민을 끌어당길 신선한 무소속 후보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싸움도 명쾌하지 않다. 경제·교육·일자리·대북 공약 대결은 뒷전으로 밀렸다. 투표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지지율 제1 후보의 옥석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BBK에 이면계약설에 소동이 많더니 급기야 이젠 도장 타령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사기혐의자 가족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유권자는 검찰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검찰이 주역이 되는 대선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나.

22일간의 선거운동은 대선의 마지막 열병식이다. 부실해서 죄송하지만 경제 하나만큼은 살려 보겠다는 목소리가 옳은지, 지난 5년간 많이 잘못했지만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애걸이 옳은지, 결국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5년 뒤 보다 멋진 후보, 보다 멋진 대결을 기대하면서 유권자는 후보보다 몇 배나 더한 인내로 이번 대선을 넘겨야 한다. 그렇다고 투표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선의 선택이 불가능하게 됐다면 시대정신에 근접한 차선의 후보를 찾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