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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 DJ·노무현’ 의 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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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선 D-23일. 정치권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니 ‘옛날의 50년’이니 하면서 논쟁이 뜨겁다. 이런 감정적 정치 구호에 현혹될 이유가 없다. 이들은 “김대중(DJ)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허송한 10년 세월을 5년 더 연장하려 하는가” “군사정권 시대로 되돌아가려 하는가”라며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겁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겪을 만큼 겪어 봤다. 물론 진보세력은 “진정한 진보정권은 들어선 적이 없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보수세력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 진정한 보수정권이 들어선 적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역사는 결코 과거를 그대로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정(正·산업화 시대)-반(反·민주화 시대)’을 거쳤으면 이제 ‘합(合)’의 시대로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다행히 주요 대선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화합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분열과 갈등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자와 화합주의자 중에 누가 이기겠느냐”며 화합주의자를 자처했다. 정동영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래 먹거리와 관련해 고민한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막혔던 한반도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표를 얻기 위한 입에 발린 소리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그것이다.

 청와대 세종실에는 7명의 전직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 있다. 조만간 노 대통령의 초상화가 추가된다. 이들 8명의 대통령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이 왜 없겠는가. 그들의 집권기를 들춰 보면 악취 나는 구석이 왜 없겠는가. 그래서 인정할 수 없다고? 그러면 악순환이 계속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DJ는 ‘제2건국’을, 노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를 내세우면서 역대 대통령과의 차별화와 단절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됐는가. 강력한 반발을 초래해 집권 기반만 약화됐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박정희 55.4%, 김대중 17.1%, 전두환 3.1%, 이승만 2.2%, 김영삼 1.6%(지난해 중앙일보 여론조사). 박정희 83.8%, 김대중 38.4%, 전두환 26.7%, 노무현 8.3%, 이승만 7.4%, 김영삼 6.0%(올해 문화일보 여론조사·복수응답). 이런 현실에서 박정희와 이승만을 매도한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부한다면? 반대편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끝없는 대립과 대결, 분열과 반목으로 이어진다.

이승만은 건국과 탁월한 외교감각을 가졌고, 박정희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김영삼은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를, 김대중은 외환위기 탈출과 분단 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했다. 노무현은 탈권위 사회를 만들었다. 군사정권 말기 분출하는 민주화 욕구가 극단적 폭력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물대통령’이란 혹평을 받은 노태우식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식민지에서 독립해 건국 60년 만에 세계 13위 경제대국이 됐고, 민주화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이뤄 냈다. 우리 국민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기는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그 시대 자신의 소명을 나름대로 해 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잘못된 과거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역대 대통령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건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못마땅하고 분해도 한발씩 물러서자. 역대 대통령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역대 대통령 기록관을 만들고 그들의 업적을 새로 평가해 교과서에 수록하자. 그래야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