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집값 바닥 안 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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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사진)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의 주택경기가 더 침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파문을 차단하기 위해 이번 주 또다시 긴급 자금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발(發) 금융 부실이 진정되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주택경기 더 나빠지나=그린스펀은 23일(현지시간) “현재 미국의 집값은 바닥이 아니다”며 “매물이 대량으로 쏟아지는 ‘셀링 클라이맥스’엔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금융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약한 고리였는데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며 “그래서 충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택경기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절반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는 대단한 유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은 50% 이하”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주택경기의 침체는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며 자신에게 제기되는 일부 비판론을 일축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따른 위기는 내년에 최악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내년부터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모기지 대출 규모가 3620억 달러에 달한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2년간 낮은 금리를 적용하다가 그 이후에 금리가 크게 높아지는만큼 내년에는 연체율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에 다시 불똥 튄 서브프라임 사태=ECB는 23일(현지시간) 긴급성명을 내고 “26일부터 은행 간 단기자금시장에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자금 투입을 통해 은행 간 자금 결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기지 부실에 따른 손실이 은행·증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ECB는 투입될 자금의 규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화됐을 때 ECB는 네 차례에 걸쳐 2115억 유로(약 290조원)의 긴급자금을 공급한 바 있다. 이번에도 최소한 100억 유로 이상이 시장에 풀릴 전망이다.
 모기지발 부실은 재보험 회사까지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무디스와 피치 등 신용평가 회사들이 재보험 업계의 신용도 재평가에 들어갔다”며 “이르면 이번 주 중 신용등급 하향 조정 등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보험 업계는 모기지 관련 채권 보증에 따른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보험회사인 스위스리는 최근 모기지 부실로 11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공개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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