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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굴이 당기는 겨울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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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27면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입맛이 당기는 것이 하나 있다. 싱싱한 굴이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석화 한 접시에 한잔 어때요?”

통굴을 바로 까서 그대로 먹으면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입 안 가득 퍼지는 상큼한 바다 내음과 차가운 소주 한 잔이 식도를 따라 내려오면서 주는 짜릿함이 그리운 계절이다. 추운 겨울밤 동네 어귀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그 상큼함과 짜릿함의 기억 때문이다.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굴은 생으로 먹는다지.”

“굴은 바닷가에서 발견되는 조개 무덤으로 보아 선사시대 이전부터 먹었다고 하죠. 기록상으로 보면 고대 로마 사람들이 조개류 중 가장 좋아했던 것이 굴이라고 해요. 이미 기원전부터 유럽에서는 굴 양식이 시작됐다고 하니 자연산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특히 프랑스 사람들이 생굴을 좋아하지. 소설가 발자크가 한 번에 굴 12다스, 그러니까 144개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야.”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릴 때면 일반적으로 생굴로 시작됐다고 해요. 12다스를 먹는 손님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죠. 껍데기를 빼고도 그 무게가 무려 1㎏ 이상이 된다고 하니…. 그런데 그렇게 굴을 먹고 나서 또 식사를 했다니 정말 대단하죠.”

“굴이 몸에 좋다고 하니 그렇게 먹었던 것 아니겠어. 일종의 스태미나 식품으로 여기잖아. ‘굴을 먹으면 보다 오래 사랑을 나누리라’하는 속담도 있고.”

“카사노바도 즐겼다고 하니 그런 점도 있긴 있었겠죠. 하지만 아직 교통수단이 발달돼 있지 않은 시기에 싱싱한 해산물은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었죠. 그래서 어쩌면 과시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도 프랑스에서는 평상시에는 잘 먹지 않다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장 많이 즐기죠. 그만큼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죠.”

어쨌든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은 단백질과 당분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미네랄의 보고다. 따라서 굴은 옛날부터 노인과 병약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체력회복에 좋고, 강장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굴은 바위에 붙어살아서 석화(石花)라고 하죠. 어떤 이들은 까지 않은 굴만을 석화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죠. 껍데기째로는 통굴, 껍데기를 까서 속의 내용물만을 부를 때는 깐굴 또는 알굴이 맞아요.”

“그뿐만이 아니야. 자연산 굴은 알이 작고 양식 굴은 크다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지. 굴을 양식하는 방법에는 돌에 들러붙여 키우는 투석식과 남해안에서 줄에 꿰어 바닷물에 넣어 키우는 수하식이 있어. 투석식으로 키운 굴이 작고 돌에서 캐는 것을 보고서 자연산이라고 여기는 것이지.”

돌에 붙은 굴은 바닷물이 들어와야 잠기기 때문에 플랑크톤을 섭취하는 양이 적어 크기가 작고, 수하식 굴은 항상 바닷물에 잠겨 있어 플랑크톤의 섭취량이 많아 알이 큰 것뿐이다. 다른 것 필요 없이 레몬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생굴이 굴 맛을 즐기기엔 그만이다. 하지만 뜨끈하고 시원한 굴국밥이나 굴짬뽕, 굴을 듬뿍 넣은 보쌈김치와 돼지수육도 놓칠 수 없다. 그리고 종로 피맛골에 있는 ‘열차집’의 굴전과 굴젓은 쩡한 겨울밤에 더욱 놓치고 싶지 않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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