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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칼럼>북한산 붙임바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북한산 백운대 가는 길목에 사람 키 서너길되는 피라미드모양의바위가 하나 있다.그 화강암바위의 전면은 여러 곳이 움푹움푹 패어 있고,그 패인 부분마다 주먹만한 돌이 하나 얹혀 있다.
이 바위는 「애기빌이」 무속신앙의 기도터인 「붙임바위」다.「부암」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붙임바위는 백운대 가는 길목만이 아니라 한국의 산기슭 어디서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부암을 찾는 사람은 애기를 못낳는 돌여인 곧 석녀들이다. 그 석녀들이 작은 돌을 잡고 혼신의 힘으로 부벼대면 모암인붙임바위에 그 자암이 들어앉을 구멍이 생겨나 바위가 서로 붙게돼 아기를 갖게 된다는 우리의 민속신앙이 거기에 있다.
음을 상징하는 바위구멍에 양기로 발기한 돌이 삽입돼 아기를 만든다는 이 부암의 「바위부벼대기」는 오갈데 없는 「에로스」의모티브를 보여준다.
휴일 북한산 깔딱고개를 오르다보면 그 맞은편 인수봉에 암벽등반하는 산꾼들이 개미처럼 들어붙어 있는 광경을 목격하는 수가 있다. 한국산악운동의 요람으로 불리는 큰바위로서의 이 인수봉이야말로 「바위의 아들」인 산사람을 낳는 「산악인의 붙임바위」다.산꾼은 이 인수봉에 자신의 온몸을 비벼대 그 바위와 한몸으로결합함으로써 바위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부암에 애기빌이하는 석녀가 바위와 합일을 느끼는 엑스터시는 아기를 갖기 위해 온몸이 땀으로 젖도록 자암을 모암에 문지르는그 정성에 깃드는 간절함을 전제한다.그런 간절함이 없다면 제아무리 큰 구멍이 나도록 용을 써도 바위는 감정과 체온까지 지닌인간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암벽등반도 그렇다.바위에 붙는 산꾼도 석녀가 아기를 원하는 강도(强度)의 간절함으로 바위를 대해야「바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바위에 붙어있는 사람은 추락하지 않기 위해 석녀이상으로 애타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속에 온몸으로 바위를 끌어안아야 한다.그순간 바위도 바위가 아닌 사람으로 감응해 제몸을 열어야만 그 산꾼은 살아난다.사람과 바위가 지닌 초감적이면서 초 월적인 생명력이 발휘되는 그 과정만큼 에로틱한 행위는 없다.사람과 자연이한몸으로 어우러지는 에로티시즘의 정수가 암벽등반에 있는 것이다.지난주 일요일 나는 깔딱고개에서 인수봉을 올려다 보았다.거기에는 여느 휴일과 마찬가지로 바위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나는 숨막히는 출산의 통과제의로서 암벽등반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곁에 서 있던 어느 소년이 함께온 그 아버지에게『아빠 저것좀봐.사람들이 개미처럼 바위에 붙어있어.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하고 물었다.
그 40대초반쯤으로 보이는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응 저런거.아무 것도 아니야.미사일 한방이면 다 날려버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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