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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공포 신드롬] 홈쇼핑에도 호신용품 불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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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여유만 있으면 사설 경호원이라도 붙여주고 싶은데…."

서울 안암동에 사는 맞벌이 주부 김경옥(34)씨는 최근 잇따른 납치.살해 사건 보도를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때문이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 아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그렇다고 아들 때문에 당장 회사를 그만두기도 힘들다. 낯선 사람은 조심하라고 아침.저녁으로 단단히 주의를 주는 수밖에 없다.

전업주부 고진영(38.서울 대치동)씨는 개학 후 아이(9)를 직접 학교에 데려다 준다. 연일 보도되는 강력사건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다. 아이가 친구랑 걷고 싶다고 떼를 쓸 때면 조금 거리를 두고 뒤따라가면서 무사히 학교 정문으로 들어설 때까지 지켜본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시민들 사이에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딸 두명을 둔 정숙자(45.서울 서교동)씨는 지난 주말 함께 옷을 사러 나갔다가 크게 싸웠다. 딸들이 고르는 옷마다 퇴짜를 놓자 말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정씨는 "딸들이 범죄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비싼 옷이나 튀는 옷은 안 된다고 한 것인데 애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공포가 괴담까지 만들어냈다. 얼마 전 서울 양천구 목동 지역의 주부들 사이에서 해괴한 얘기가 진실처럼 돌았다. 한 주부가 아파트 주변 등산로를 산책하다 담배를 피우는 고교생 4~5명을 보고 나무랐다가 집단 구타와 성폭행을 당한 뒤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자살했다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었다. 관할 경찰서에 확인한 결과 헛소문으로 밝혀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신용품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TV 홈쇼핑에는 1백25만원을 내면 하루 8시간, 다섯 차례 경호받을 수 있는 '보디가드' 상품이 등장했다. C인터넷 쇼핑몰의 경우 이달 들어 호신용 스프레이.경보기.호루라기 등 호신용품 판매가 20%가량 늘었다. 사설 경비업체인 S사 관계자는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위성 추적장치를 통해 가입자가 어디서든 버튼을 누르면 즉각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동식 서비스'를 오는 4월부터 제공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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