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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22.화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얼마전 우리나라에『마농의 샘』으로도 소개되어 더욱 익숙해진 마르셀 파뇰의 희곡 세 편(『화니』『마리우스』『세자르』)을 조슈아 로건 감독이 61년 미국에서 하나로 묶어 제작한 『화니(Fanny)』는 대단히 동양적 정서로 인간의 감정 을 표현해 우리들에게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마음의 가닥들을 찬찬히 풀어 다듬는 솜씨가 뛰어난 극작가 파뇰은 아주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인간의 얘기,그러니까 순결을 잃고 임신한 여자에게 줄줄이 이어지는 신파조의 지저분한 얘기를 아주 단순하고도 즐겁게 풀어나간다.
이 영화에선 머나먼 곳 「황금나무가 자라는 섬」에 대한 꿈에젖어 뱃고동 소리만 들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안달하는 19세 청년 마리우스(호르스트 부흐홀츠)와 사랑이 인생의 전부며 배를 타고 떠나라고 하면 마리우스가 오히려 자기 에게 돌아올줄알았던 18세의 생선장수 딸 화니(레슬리 캐런)가 틀림없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정신병자 「제독님」이 오히려 정상인으로 보일만큼 모두들 웃기는 사람들이 마르세유 항구에 모여 살며 엮어 나가는 이얘기에선 돌멩이에 모자를 씌워 놓고 길바닥에 늘어앉아 장난치는짓궂은 노인들이 차라리 더 흥미있는 등장인물들 이다.
약삭빠른 장사꾼임을 자처하며 죽을 때 『가장 아쉬운 건 인생의 자질구레한 즐거움을 잃게 되는 것』이라면서 유쾌하게 임종을맞는 지극히 낙관적인 파니스,그 역을 맡은 사람은 언제나 싱글벙글거리며 노래하는 샹송가수 모리스 슈발리에였다 (그는 할리우드로 건너갈 때 자신의 구수한 프랑스 억양을 잃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아름다운 항구의 풍경을 배경으로 깔고 담아 놓아서인지 죽음과 슬픔까지도 찬란하게 여겨지기만하던 영화였다.
이런 작품을 보면 인간의 마음은 이성과 감정을 전환시키는 어떤 다단계 기어가 달렸거나 그릇에 담기는 물과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영화에서였다면 주인공들의 단순하고 모순된 행동을 꼬치꼬치 따지고 싶을만도한데,이 영화를 보면 어리석은 실수까지도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니까 말이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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