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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화展 '거장의 숨결' 발상 좋지만 원작의 숨결은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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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디지털 복제화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근사해 보이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대형 전시.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한달새 유료관객 1만2천명을 동원한 '거장의 숨결전'(3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두 얼굴'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유명 미술관의 원화 복제품 1백20점을 출품한 이 전시가 국제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도깨비 전시'라고 지적한다.

서양미술사 대표작품을 보여준다는 이 전시는 우선 조악한 색감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전시장 입구 '모나리자'. 이 작품은 차라리 원작과 다른 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신인상파 조르주 쇠라의 '모델들'과 '우물가의 여인들'은 최악의 케이스. "갱지에 인쇄한 사진보다도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학예연구실장의 견해다. 또 모네의 '수련'복제화 밑에 파리인상파미술관 소장이라고 표기해 놓았으나 그런 미술관은 유럽에 없다.

이에 대해 전시 관계자 이영석(더윈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장)씨는 "유럽의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35㎜ 슬라이드 필름을 세트(작품 사진 10점)당 36유로(약 5만4천원)씩 주고 구입해 이를 토대로 복제화를 만들었다. 해당 미술관과는 전시 개최와 관련해 상의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런 복제화가 무려 64점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지난 9일 장 마크 귀통 프랑스 조형예술저작권협회 사무처장과 함께 이 전시를 둘러본 프랑스국립미술관연합 한국지부 측은 "전시 자체가 불법 내지 편법"이라고 지적했다. 35㎜ 필름은 기념품. 관례상 강의실 슬라이드용으로 학교에서 사용되는 것까지는 양해가 된다. 대신 인쇄용 사진은 엑타크롬(고해상도 필름)을 쓰며, 그것도 소장처가 제공한 것이어야 한다. 복제물마다 미술관 소속 사진촬영자의 저작권 표시를 명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영석씨는 "작가 사후 50년이 넘어 저작권이 소멸된 작품만을 추렸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발언은 미술관이 갖고 있는 권리인 원본'소장권'을 무시한 것이다.

또 원작과 복제물 사이의 혼란을 막기 위한 장치인 '전시허가권'도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거장의 숨결전'은 국내 저작권 규정에도 어긋난다. 저작권법 32조는 일반 기념품이 아닌 전시용 복제물의 경우 엄격한 규제장치를 두고 있다. 전시용 복제물은 원본과 동일한 재료(캔버스 혹은 청동)를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아 놓은 것이다. 원본이 캔버스에 그린 유화 작품일 경우 종이 포스터용 복제화만 허용한다는 식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 전시회가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열렸다는 점이다. 문화행정의 주무 부처가 기초적인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고 덥석 후원자로 나섰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가 방학철을 맞은 학생들에게 편법으로 모아 놓은, 그것도 원작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라고 추천한 셈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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