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새역학구조>1.대결구도 바뀔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역으로 남아있던 한반도가 북-미협상 타결로 극적인 전기를 마련케 됐다.
지난 89년이후 지속돼온 쌍무적 관계개선을 통한 동북아시아 냉전구조 와해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동구권및 舊소련의 몰락으로 시작된 세계질서 재편은 특히 동북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화해,한국과 러시아.중국의 연이은 외교관계수립이라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이번 협상타결은 북-미,북-일관계 개선이라는 또하나의 쌍무적관계정립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이번 협상타결은 냉전구조 최후의 연결고리인 남북간에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나가며 동북아구조개편의「최고감독관」이라할 미국과 어떤 접점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를숙제로 남겨놓았다.
우리 정부가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할 작업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정부내 강경파들은 현재의 남북한과 미국의 3각구도가 북한의 의도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싫든 좋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냉전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선결과제임을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당면한 선결작업은 북-미회담의 후광속에 권좌에 오를 김정일(金正日)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혼선을 빚어온 대북(對北)정책을 전면 재손질해야한다.
남북경협의 허용,정상회담의 재추진 등이 당면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와 함께 우리정부는 새로운 환경속에서의 대미(對美)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문제제기도 있다.
미국은 이미 알려진대로 국제환경 변화와 경제력 약화가 자칫 대외(對外)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에「과도한 양보」를 했다는 비난을 미국이 무릅쓰고 협상을주도한 이면에는 바로 이같은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클린턴 정부는 경제외교와 안보외교를 동전의 양면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경수로 지원 이면에는 체르노빌 사건이후 동면상태에 빠진 원자력 건설시장을 개척하려는 미국의 경제적 의도와 맞물려 있으며 또한 한국형 경수로가 채택되더라도 결국 부가가치가높은 핵심부품은 미국이 제공케 돼 한국측은 토목공사정도만 맡을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제기는 한국 외교력이 본격 가동될 시점이 오히려 지금부터라는 강력한 시사다.
본격 출범을 앞둔 김정일정권은 미국의 강권에 못이겨 남북대화조항을 협상문에 명시키로 동의했지만 실제 행동에 옮길지는 아직미지수다.
이미 북한은 제네바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잠재우는 한편 북-미,북-일 관계개선을 통한 체제유지에 필요한 수혈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 오래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美.日과의 새로운 관계개선이 가속화되면서 부분적인 개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김정일은 정권유지의 아킬레스건이라할 개방속도 조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북한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관망자세를 보여온 일본의 행보도 주목거리다.
국력에 걸맞은 외교력을 구사하겠다고 일본이 공언한 만큼 새로운 구도속에서 자기몫 챙기기에 본격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북-미협상 타결은 동북아의 냉전구도를 뒤엎는 「사건」이긴 하지만 북핵에 가려있던 경제문제를 첨예하게 표출시킴으로써 상당 기간 구조조정기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