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이지성 지음

중앙일보

입력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
"미안해, 좀 더 일찍 손 내밀지 못해서…"

이제 갓 열살 남짓한 아이들. 앞 길이 구만리 같은 새순들이 싹도 틔우기 전 죽고 싶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피노키오 선생님이 도우미로 나섰다.

“죽고 싶다는 말이 적힌 종이들이 3학년은 열 명에 한 명, 5학년은 열 명에 두세 명꼴로 나왔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 보았다는 아이들도 3학년은 한 반에 한 명, 5학년은 한 반에 서너 명 정도나 되었다. 충격이었다.”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게 하자 위와 같은 응답이 나왔다. 아이들은 죽고 싶은 이유로 학원 스트레스와 학교 부적응· 친구 문제·가족 문제를 꼽았다.
“학원에 가라고 하는 엄마가 마귀 같다”,“학원에 불을 지르고 나도 함께 죽고 싶다”는 험악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엄마, 아빠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단다. 아이는 궁지에 몰렸는데 부모는 까맣게 모를 수 있다 싶어 더욱 안타깝다.

이 책은 일찌감치 세상에 지쳐버린 아이들과 그 고사리 손을 잡아 준 평범한 교사의 가슴 따뜻한 상담 이야기다. 올해로 교직 8년차인 저자는 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다양한 고민과 상담 사례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왜 아이들이 자살을 결심하고, 어떻게 음란물에 중독되는지, 그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손 내밀어야 하는지…. 아린 한켠으로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반 아이들에게 따돌려진 찬별이, 학원에 짓눌려 죽고 싶은 윤정이, 음란물에 멍든 해준이, 한 모금 연기에 인생을 내뿜는 어른 같은 아이들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진 듯 또렷하게 그려진다. ‘피노키오’는 이지성 교사가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그의 눈에 책 속의 주인공들은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나무인형이었다. ‘아이들을 섬기자’가 교육철학인 이 교사가 선택할 길은 자명해졌다. 소외된 나무인형을 보기 위해 그는 피노키오가 됐다.

공부에 대한 압박 또는 학원 스트레스 때문에 죽고 싶다는 아이에게 피노키오 선생님은 어설픈 조언 따윈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500원짜리 컵 떡복이를 조용히 건넨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주요수단은 논리와 상식 아닌 관심과 사랑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막상 현실에선 나무라고 지적하는 일이 다반사다. 피노키오 선생님은 아이들을 대하는 7원칙을 조용한 듯 강하게 조언한다.

긍정의 말로 아이에게 긍지를 심어줄 것, 부부가 먼저 사랑할 것, 아이의 아침을 영광스럽게 열어줄 것, 절대로 포기하지 말 것, 아이에게 집중할 것, 아이의 인격을 존중할 것, 아이를 믿을 것이 바로 그 금과옥조다.
“우리 아이가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라고 후회하기 전,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라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프리미엄 이송이 기자 song@joongang.co.kr
자료제공=성안당 / 031-955-080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