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비서실>197.5共청산 비밀보고서 1.5共특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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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비」라는 붉은 도장이 선명한 6共 청와대의「5共청산 보고서」는 88년9월 청와대를 중심으로한 권력핵심의 정치기류를 증언해준다. 비밀보고서의 정식명칭은「국회 5共비리특위 운영대책 보고서」인데 이상하게도 문서작성처가 적혀 있지 않다.통상 청와대비서실은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표지 아래쪽에「정무」「민정」등 소속비서실을 명시한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Y씨는『두가지 점에서 이 비밀보고서는박철언(朴哲彦)정책보좌관실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첫째 근거는 소속비서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점.朴보좌관실은 대북(對北)업무를 전담 한데다 약 20명의 소속원이 대개 안기부에서 옮겨온 사람들인지라 유난히「보안」을 강조해 상당수 보고서에 소속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보안을 워낙 강조해 보좌관실 사람들은 다른 비서실 사람들과도 잘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두번째 근거 는 보고서가 워드프로세서로쓰인 사실.당시만 해도 귀했던 워드프로세서는 각 비서실의 일부여직원이 다루었는데 보통 이런 민감한 비밀보고서라면 다른 비서실에선 여직원에게 맡기지도 않았다고 한다.반면 보좌관실에선 보안의식을 믿어서인지 朴보좌관이 안기부에서 데려온 여직원에게 대부분의 문서작성을 맡겼으며,여직원은 칸막이를 한 좁은 공간에서혼자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朴前의원은 보고서의 내용과 양식을 예로 들어『보좌관실은 주로 정책에 관련된 보고서를 냈으며,보좌관실 직원들은 스스로 만든 보고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반드시 출처를 적었다』며 이 비밀보고서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 다.
어쨌든 이 비밀보고서는 88년9월의 정치상황인 동시에 5共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청와대의 상황인식이기도 하다.
그러면 청와대에서 본 당시 정치상황은 어떠했는가.보고서는(야당이)「올림픽기간중 표면상 활동을 중지하고 자료수집.정리에 치중,올림픽이후를 대비한 본격적인 공세준비에 돌입」「5共비리 문제를 정부.여당에 대한 주요 공격무기로 최대한 활 용하려 할 것으로 보임」등이라고 야권동향을 정리했다.
보고서는 이어「올림픽이후 수개월간 정국상황은 향후 제6공화국의 정치일정과 관련,민족의 미래를 판가름할 수도 있는 실로 중대한 국면」이라는 말로 이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문제는「5共비리」였다.보고서는「이같이 중차대한 시기에 정국이 5共비리 공방으로 점철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제6공화국에 대한 신선한 기대는 줄어들고 정부.여당은 위축일로를 걷게 되므로 5共비리 문제는 현재 6공화국 최대의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당연히 결론은「제5공화국의 어두운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여기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은「야측(野側)저의(底意)분석」이라는 항목이다.보고서는「각종 유언비어성 비리사례를 포함한 물량공세와 특위 다수의석 확보를 바탕으로 한 인해전술식 밀어붙이기 전략으로 제5공화국이 비리투성이 공화국임을 노출시 키고,제6공화국은 제5공화국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은연중 부각시켜現정부.여당의 대국민 신뢰도 저하및 대통령각하의 이미지 실추를기도」(6공화국은 노태우당선자시절 「각하」라는 말이 권위주의적이라며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6共 출범후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내부적으로 사용키로했다),「全前대통령을 포함한 전.현직 고위인사를 국회 증언대에세우는등 직접 조사함으로써 여소야대(與小野大)국회에서 야당의 위세를 과시,정치적 효 과의 극대화를 꾀함」이라고 분석했다.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이 항목 끝에 괄호를 한뒤「정치자금의 흐름과도 관련」이라고 사족을 단 것이다.다시말해 야당의 강공전략이 정치자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술수라는 얘기다.
Q씨는『당시 여당은 물론이고「광주」를 부르짖었던 평민당 의원들도 모두 광주특위보다 5共비리특위에 들어가려고 야단들이었습니다.광주특위에는 들어가봐야 한계가 분명하니까 확실히 뭘 얻어내는 것도 없이「미진하다」는 욕만 들을게 뻔했죠.반 면 5共특위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뿐 아니라 흔히 말해 먹을게 많았거든요.특위 위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수 있어요.광주특위에는 초선의원들이 많은 반면 5共특위에는 비교적 중진급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며 출발부터 5共특위 주변에서「구린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음을 확인해주었다.
Q씨는 보다 구체적으로 구린내 나는 정치자금 모금방식에 대해『가장 대표적 예가 증인출석 문제죠.각당 간사들이 출석대상 증인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매우 광범위한 증인채택 가능성을언론에 슬쩍 흘립니다.대개 대기업회장등인 증인 후보들이 이를 피하려고 로비에 나서게 마련이죠.그러면 얼마후 간사들이 다시 회의를 하고는 대상을 축소해주는 거예요.그렇게 몇차례 증인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치자금이 만들어지는 거죠』라고 증언했다.
민정당 특위위원이었던 X씨는『여소야대 국회라 야당쪽으로 돈이많이 몰렸죠』라고 기억했다.그는 『처음에는 증인 후보들이 일단여당에 얘기하면 다 통하는줄 알고 돈을 가지고 여당의원을 찾아왔죠.그런데 여당의원 말대로 잘 안되니까 다들 야당쪽으로 몰려가더군요.「증인에서 빠지게 해달라」든지「이런 부분은 지적하지 말아달라」는등 중요한 거래는 전부 야당으로 가고 여당쪽에 남은것은「야당의원을 소개해달라」는 자문이나「회의진행과정에서 지원발언을 부탁한다」는 정도에 불과했 습니다』며 여당의 상대적 결백(?)을 강조했다.
X씨는 이어『가장 말이 많았던 것은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회장이었죠.鄭회장측은「정기검진을 위해 단식해 회복시간이 필요하다」는 별 설득력 없는 이유로 국회 출석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해 왔어요.야당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했죠.평소 같으 면「국회를 무시한다」는등 고함을 질러댔을 법한 야당측에서 이상하게 鄭회장건을 얘기하면 군소리없이 받아들이는 거예요』라며 경험칙에 의한「혐의」가능성을 강조했다.이같은 증언은 실제로 鄭회장의 국회증언 과정에서 야당의원들이 평소와 달리 신문은 안하고『존경받는 기업인』『탁월한 이사장』등 공치사를 늘어놓거나『회장님』『선배님』등이라고 깍듯이 존대했던 기현상과 일치한다.
웃지못할 해프닝이 비일비재했던 것도 그 무렵이다.당시 국회에근무했던 W씨가 기억하는 대표적 사례.
***주머니에 수표다발 야당의 모의원이「5共특위가 요즘 좋다더라」는 소문을 확인해보자는 장난기에서 5共특위 위원이었던 평민당 중진 K의원과 술을 마시다 슬쩍 양복 저고리를 바꿔입고 나갔다.그 의원은 K의원의 주머니를 뒤져보다 고액수표 다발을 보고 경악, 『작은 수표면 한두장 감추려했는데 너무 큰 수표라오해받을까봐 손도 안대고 돌려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다른 평민당 중진 K의원이 업체로부터「같은 당 의원들에게 나눠달라」는 부탁과 함께 받은 돈을 혼자 챙겼다고 해 동료의원이 항의하고(당시 평민당의원이었던 소설가 이철용씨는 자신의 소설『국』에서 이와 관련된 경험을 풍자해 묘사했다) ,술취한 민주당 K의원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벌떡 일어나 같은 당소속 의원에게 『사기꾼』이라고 고함을 질렀던 일등 당시 정치판의 타락상은 상식을 뛰어넘었다.심지어 「많이 챙긴다」고 소문난 민주당 K의원은 같은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경 영하는 사업체 비리를 캔뒤 다른 당 의원에게 알려준 다음 동료 전국구의원에게 찾아가『내가 막아주겠다』며 사례비를 갈취했다고 한다.
이같은 난장판을 청와대가 몰랐을리 없다.그래서 보고서는 「야당의 강공은 정치자금과 관련돼 있다」는 분석을 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상식이하의 타락상이 계속될수 있었던 것은 사실 6共 청와대의 은근한 방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 야 한다.
5共특위 위원이었다 6共말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김중권(金重權)씨는『청와대에 갔더니 5共 특위 당시 재벌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던 야당의원들의 명단이 있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명단에 올라있던 의원은 10여명으로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이를 문제삼은 적은 없었다.여소야대 정국하에서 적당히 기름칠이 돼야 까다로운 고비도 원활히 넘길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 정치사에서 야당의원들의 비리가 정치공작의 맥점으로 활용돼 왔다는 점도 6共 정부의 방조 를 설명해주는 배경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6共 청와대가 이같은 뒤죽박죽 비리국회를방조하면서까지 탈출하고자 했을 정도로 5共 비리의 늪이 깊었던것이다. 〈吳炳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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