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라, 한국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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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3년 전인 2004년 5월 김호곤 감독이 이끈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6전 전승(9득점·무실점)의 ‘무결점 승리’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당시 최종예선 상대는 이란·중국·말레이시아로 모두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은 5차전인 중국 원정에서 2-0 승리를 따내며 일찌감치 본선행을 확정 지었다.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은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1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벌어진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5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조 최하위 우즈베키스탄과 득점 없이 비겼다. 3연승 후 두 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부다. 다행히 이날 2위 바레인도 홈경기에서 시리아와 1-1로 비기는 바람에 한국은 승점 1점 차 1위를 유지했다.

 한국은 21일 오후 8시 경기도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최종전에서 바레인과 비기기만 해도 6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박성화호를 바라보는 축구팬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차갑다.

최종예선 상대인 바레인·시리아·우즈베키스탄은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팀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끌려 다녔다.

 17일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은 ‘집단 무기력증’에 걸린 것 같았다. 이기겠다는 의욕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패스의 정확성, 공격 전환 속도도 떨어졌다. 오히려 우즈베키스탄의 간헐적인 공격에 수비가 무너지며 실점 위기를 맞았다. 예정 소집일보다 사흘 앞당겨 훈련을 시작했고, 일찌감치 현지에 도착해 적응 훈련을 했음에도 울퉁불퉁한 그라운드에서 감각을 잃고 허둥댔다. 보다 못한 한국 응원단에서 “정신 차려 한국”이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였다.

 코칭 스태프의 용병술도 흔들렸다. 박주영(서울)-신영록(수원)의 투 스트라이커가 부진하자 박 감독은 후반 20분 측면 미드필더 이근호(대구)를 빼고 장신 김근환(1m92cm·경희대)을 최전방에 투입했다. 하지만 공격 숫자를 늘렸음에도 날카로운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종예선에서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김승용(광주)을 후반 40분에야 투입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18일 오전 전세기로 귀국한 대표팀은 오후에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회복 훈련을 했다. 박 감독은 “어차피 바레인과의 최종전에서 베이징행 티켓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무리하지 않았다. 심기일전해 반드시 바레인전을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바레인전에는 신영록과 신광훈(포항)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한다. 더구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바레인이 거칠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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