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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난장판 대선, 이성이 돌아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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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꼭 한 달 후 국민은 다음 대통령을 뽑는다. 이번 대선은 역사상 가장 혼돈스럽고 저급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이성(理性)이 떠난 자리에 추악한 권력욕만 남아 있다. 정책 대결, 품격은 실종되고 김경준과 BBK라는 비수만 날아다닌다.

오랜 기간 지지율 50%를 누리던 제1 유력 후보에게서 위장취업과 탈세가 드러났다. 지지자의 한숨이 깊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김경준의 입만 쳐다본다. 총리, 집권당 총재, 감사원장, 중앙선관위장, 대법관 등 4부를 누볐던 지도자가 느닷없이 출마했다. 두 번 국민의 심판을 받고도 자당 후보가 허약한 틈새를 보이자 당을 배신했다. 자신이 입에 달고 다니던 원칙을 내팽개쳤다. 사회의 정신적 마지노선을 유린했다. ‘백년정당’ 운운하던 여당은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하자 당을 깨고 대선 위장용 당을 만들었다. 개표 계산도 못하고 유령선거인단이 난무하는 코미디 소동으로 후보를 뽑았다. 자기들은 그래 놓고 김경준이 입국하자 멀쩡하게 뽑힌 제1 야당 후보더러 사퇴하라고 한다. 민주당은 그런 신당을 국정 실패 세력이라고 오랫동안 비난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그쪽과 후보와 당을 합친다고 했다. 그 당의 후보는 경선 불복과 탈당, 당적 변경의 전력이 많다. 그는 지지율이 떨어지자 슬그머니 단일화 장막 뒤로 숨고 있다. 정말이지 난세다.

이런 난장은 정치세력들이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체면이나 원칙은 상관없다는 비이성 때문이다. 국정 실패로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으면 정권을 내줄 수도 있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을 내주면 지옥에나 떨어지는 것처럼 노심초사요, 전전긍긍이다. 멀쩡한 당을 쪼개 새 당을 만들고, 집단 탈당해 다시 새 당을 만들고, 다시 쪼개졌던 당과 합치고선 “5년 더 시켜 달라”고 손을 벌린다. 보수세력은 정당한 절차로 후보를 뽑았다. 김경준 수사 결과에 따라 그 사람에 결정적 하자가 드러나면 후보를 바꾸면 된다. 그런데 김경준이 들어오기도 전부터 스페어 후보니 하는 이상한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현직과 전직 대통령 후보가 싸우고 있다. 당은 경선 후 혼돈 속에서 갈라졌고, 후보는 오만하고 취약했으며, 지금 일부 보수세력은 원칙의 배반자를 싸고 돌고 있다. 차떼기에 대선잔금까지 ‘추억의 바람’이 다시 분다. 이런 보수세력에 과연 정권교체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선은 민주국가의 가장 큰 행사요 축제다. 결과만큼 절차와 과정도 중요하다. 부부싸움처럼 대선싸움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어찌됐든 지금의 후보 중에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나온다. 증거도 없이 어떤 후보는 사기꾼으로, 어떤 후보는 공작정치 수괴로 몰리면 나중에 국가는 누가 이끄나. 김경준 문제는 검찰에 맡기고 대선 판은 이제라도 이성을 찾아야 한다. 국민은 교육과 민생에 목이 탄다. 외고·사교육 때문에 난리고 실업·비정규직으로 운다. 국회에는 내년 예산안 257조원이 올라와 있다. 대선 판에 온갖 정신이 팔리면 이 예산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 후보와 정당은 유한하고 국가는 무한하다. 남은 한 달, 이성이 돌아와야 한다.